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재판소원 제도’가 12일부터 시행되면서 법원 판결에 대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게 됐다. 1987년 헌법 개정으로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이후 39년 만에 사법 시스템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재판소원 사건 16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11건은 전자 접수였고 5건은 방문 또는 우편 방식으로 제출됐다.
가장 먼저 접수된 사건은 시리아 국적 외국인 모하메드(가명)가 제기한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 취소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오전 0시 10분 온라인으로 접수됐으며 사건번호는 ‘2026헌마639’다. 피청구인은 대법원이다.
모하메드 씨 측은 재판 결과가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해당 재판이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혼인과 가족생활 보호,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모하메드 씨는 인도적 체류 자격으로 국내에 머물며 자동차 부품 사업을 운영하다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후 2024년 가석방됐지만 출입국 당국은 보호명령과 강제퇴거 절차를 진행했다. 그는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패소했다.
다만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지난 1월 8일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헌법재판소법이 정한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청구’ 요건은 이미 지난 상태여서 실제 심리 대상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날 두 번째로 접수된 사건은 납북귀환 어부 유족이 제기한 재판소원이다. 오전 0시 16분 접수된 이 사건의 사건번호는 ‘2026헌마640’이며 피청구인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다.
동해안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시민모임과 소송 대리인단은 법정 기한을 넘긴 재판 지연에도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고 김달수 씨는 2023년 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유족은 같은 해 4월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형사보상 사건은 통상 6개월 이내 결정을 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 결정은 1년 3개월이 지난 2024년 7월에 내려졌다.
유족 측은 약 9개월의 지연 기간에 대한 이자 지급을 요구하며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형사보상 결정 기간은 훈시 규정에 불과하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유족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은 지난달 20일 확정됐다.
한편 대법원에서 불법 대출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한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재판소원 제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양 의원은 “대법원 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기본권 침해 문제가 있다면 변호인단과 상의해 헌재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재판소원 제도는 이른바 ‘사법개혁 3법’ 가운데 하나로 이날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재판소원 도입법인 헌법재판소법 개정안과 법왜곡죄 도입을 담은 형법 개정안, 대법관 증원을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이날 관보에 게재했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제도는 공포 즉시 시행됐으며 대법관 증원은 공포 후 2년이 지난 2028년부터 시행된다.
재판소원은 확정된 재판을 대상으로 한다. 대법원 판결뿐 아니라 1심과 2심 판결도 확정되면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 다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을 했거나 적법 절차를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또는 법원이 헌법이나 법률을 명백히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만 청구가 가능하다.
상소 절차가 남아 있음에도 이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소원을 제기하면 보충성 원칙 위반을 이유로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
재판소원은 판결 확정일부터 3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제도 시행일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 2월 10일 이후 확정된 재판부터 청구 대상이 된다.
다만 재판소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판결 효력이 자동으로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 사건의 경우 형 집행은 계속된다.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잠정 조치가 가능하지만 헌재는 인용 가능성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 사건이 대량으로 접수될 가능성에 대비해 전담 사전심사부도 운영하기로 했다. 지정재판부 재판관 3명이 사전심사를 진행하며 부적법한 사건은 전원일치 결정으로 각하된다.
사건이 본안 심리에 회부되면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가 서면 심리와 필요시 변론을 통해 판단한다.
헌재가 재판 취소 결정을 내리면 해당 법원 판결은 효력을 잃는다. 이후 사건은 다시 법원으로 돌아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재판이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