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대한민국 기업들은 전례 없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AI, 반도체, 에너지 전환 등 글로벌 산업 지형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은 1분 1초를 다투는 의사결정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정작 경영 현장에서는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도 결과가 나쁘면 감옥에 갈까 봐 무섭다”는 토로가 나온다. 사법부는 기업가 정신보다는 사후적 결과에 치중한다.
경영진이 리스크를 감수한 사업적 판단을 내렸다가 손실이 발생한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른바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에 빠져 배임의 고의를 인정해 왔다. 경영 실패가 곧 범죄 수사의 빌미가 되는 구조 속에서, 국가적 차원의 과감한 투자를 독려하는 말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입법의 칼날마저 경영자의 목 앞에 다가섰다. 최근 수차례에 걸쳐 단행된 상법 개정(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에 이어, 지난 2026년 2월 25일에는 자사주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마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3차 개정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 의무화 등을 통해 기업의 자본 운용 재량을 제한했다. 문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 전반으로 확대된 상황과 맞물려 발생한다. 이제 경영진은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명제 앞에 서게 되었다.
단기 수익을 원하는 소액주주와 장기 성장을 원하는 대주주의 이익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사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경우, 반대편 주주로부터 배임죄 고소를 당하는 이른바 ‘고소의 무기화’가 일상화될 위험이 크다.
모든 주주의 이익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경영적 결정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라는 모호한 잣대는 경영진에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배임죄라는 형사 처벌이 더해지면 경영진은 합리적 판단보다는 사법적 면피에 골몰하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심화로 귀결될 것이다.
배임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은 증거개시제도(Discovery) 등 민사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형사 처벌이 존재한다고 해서 주주의 권익이 실질적으로 보호되고 있는가?
배임죄로 인한 형사 절차가 개시되더라도 주주는 그 소송에서 직접적인 구제를 받지 못한다. 배임죄는 실질적 피해 구제 수단이 아니라 경영진을 압박하는 심리적·정치적 도구로 변질된 지 오래다.
배임죄 폐지는 처벌의 공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문제를 ‘시장과 민사의 영역’으로 돌려놓는 정상화의 과정이다.
상법 제399조(회사에 대한 책임)와 제401조(제3자에 대한 책임) 등 기존의 민사적 구제 수단을 강화하고 입증 책임을 합리화하는 방향이 훨씬 실효성 있다. 민사적 보완책은 폐지와 동시에 추진할 과제이지, 폐지를 막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사의 의무 위반은 상법상 손해배상과 주주대표소송으로 충분히 규율 가능하다. 규제가 강화된 지금이야말로 형법이 물러설 때다.
배임죄의 ‘임무위배’와 ‘고의’ 개념은 극히 추상적이며, 특히 실질적 손해 없이 위험만으로 처벌하는 ‘추상적 위험범’적 성격은 경영진의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이는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경영자의 선의의 결정을 보호하는 ‘경영판단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확립하고 있다. 경영의 문제는 경영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에 따라 배임죄가 폐지되면 수사 중인 사건은 불기소 처분, 재판 중인 사건은 면소판결로 종결된다.
이는 특혜가 아니라, 국가가 과거의 과도한 형벌권 행사를 정책적으로 반성하고 사법 정의를 바로잡는 ‘입법적 결단’이다. 법령의 개폐로 형이 폐지된 이상, 그 법률에 기대어 진행되던 불합리한 절차를 멈추는 것은 법치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다.
규제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데 보호막은 사라지는 불균형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고사하고 있다. 배임죄 폐지는 기업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출구 전략’이자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한 손에는 글로벌 경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들고, 발목에는 배임죄라는 모래주머니를 찬 채로 어떻게 1등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제 ‘배임죄’라는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야 한다. 만약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경영판단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하여 선의의 경영자를 보호하는 장치라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