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희망합니다”…성범죄 피고인 사이 번지는 공식, 왜?

참여재판 4건 중 1건 ‘성범죄’
로펌 ‘무죄 사례’ 홍보 지적도

 

성범죄 피고인들 사이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사실상 ‘무죄 전략’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형사재판보다 무죄율이 높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부 로펌은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7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의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2025) 결과, 2020~2024년 5년간 국민참여재판(1심) 접수 사건 가운데 성범죄 사건 비율은 25.1%로 집계됐다. 국민참여재판 4건 중 1건이 성범죄 사건인 셈이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한다는 취지로 2008년 도입됐다. 무작위로 선정된 만 20세 이상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 판단에 관여하는 제도다. 하지만 성범죄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이 제도가 피고인 측의 전략적 선택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사건의 실형 선고 비율은 다른 강력범죄보다 낮은 편이다. 2024년 기준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사건의 실형 선고 비율은 33.3%였다. 살인 71.4%, 강도 50%, 상해 50%와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무죄 비율은 더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은 해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사건의 무죄 비율은 52.3%로 집계됐다. 일반 형사재판 1심에서 주요 성범죄 무죄율이 통상 3~4% 수준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격차다.

 

최근 유명 방송 관계자 사건에서도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이뤄졌다. 지난달 14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tvN ‘식스센스’ 시리즈 연출자 A씨 사건에서 피고인 측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이 사건뿐 아니라 제가 맡고 있는 다른 사건들을 봐도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재판의 트렌드처럼 되고 있는 것 같다”며 “국민참여재판은 당일에서야 검찰과 피고인 측이 준비한 자료를 중심으로 판단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의 구조가 성범죄 사건의 특성과 결합할 경우 왜곡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범죄는 폐쇄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 진술이 핵심 증거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배심원들이 성범죄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성 고정관념’이나 ‘강간통념’이 반복적으로 작동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련 연구에서 “‘연인 관계에서는 강간이 성립하기 어렵다’거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으면 동의한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평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죄 판단에 필요한 증거가 제시됐음에도 무죄 평결이 내려진 국민참여재판 성범죄 사건에서는 ‘클럽에서 만나 함께 택시를 탔다’, ‘즉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유흥업소 종업원이었다’ 등의 사정이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평소 친절하게 대했다’,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계속 근무했다’는 이유도 포함됐다. 심지어 ‘11세 미성년 피해자가 사건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고려된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흐름을 일부 로펌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인터넷에서 ‘성범죄 재판’을 검색하면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를 받아냈다는 이른바 ‘성공 사례’를 홍보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성폭력 전담 로펌은 피고인 중심 서사를 강조하며 국민참여재판 승소 사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배심원 선정 단계부터 성 고정관념 여부를 검증하고, 재판 전 성범죄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지침 제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는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과정에서 성 편견이 강한 배심원 후보를 배제하거나 판사가 별도 지침을 통해 판단 기준을 설명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역시 아동 대상 성범죄나 그루밍 범죄에 대한 별도 배심원 지침을 마련해 활용 중이다.

 

김형민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취지는 국민 법감정을 반영하는 데 있지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오히려 왜곡된 통념이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며 “배심원 교육과 표준화된 지침 마련 등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