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준강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중입니다. 상대방과 함께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라고 인식하지 못했고,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은 다음 날 기억이 없다며 고소하였고, 검찰은 피해자 진술만을 근거로 기소하였습니다. CCTV·목격자·상해진단서·문자 등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이며, 상대방은 관계 이후 스스로 걸어서 이동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인사 후 헤어졌습니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가 인정될 수 있는지, ‘기억이 없다’는 것이 곧 항거불능을 의미하는지, 법원의 판단 기준과 구체적인 방어 전략이 궁금합니다.
A.
가.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가 인정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피해자 진술이 유일하거나 핵심 증거인 성범죄 사건에서도 그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신빙성이 인정되면 유죄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입니다(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이 주요 부분에서 일관되고, 경험칙상 비합리·모순이 없으며, 허위로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가 뚜렷하지 않으면, 일부 부수 사항의 흔들림만으로 함부로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반복하여 유지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20도2473 판결).
또한 대법원은 장기간 경과로 인한 기억의 혼선이나 일부 표현 차이만을 이유로 핵심 진술을 배척하기 어렵고, 기본 취지가 일관되면 신빙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시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시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진술 내용의 주요 부분에서 일관성과 구체성이 유지되는지입니다. 최초 신고부터 경찰·검찰·법정에 이르기까지 핵심 사실관계가 일관되게 유지되는지를 봅니다.
둘째, 진술이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하고 자체 모순이 없는지입니다.
셋째,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정황과 진술 내용이 부합하는지 또는 모순되는지입니다.
넷째, 허위 동기 또는 이유의 존재 여부입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왜 즉시 벗어나지 못했나’,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 같은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사건의 구체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또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상황에서는 그 진술에 거의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을 정도의 높은 증명력이 요구됩니다. 진술 시기별 변동, 객관정황과의 불일치, 사후 행태 설명의 설득력 부족 등이 확인되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아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상당수 축적되어 있습니다.
즉 ‘피해자 진술만으로도 유죄 가능’하지만, 동시에 ‘피해자 진술만 있기 때문에 신빙성 심사는 더욱 엄격해진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위 사안에서 방어의 핵심은 피해자 진술이 이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함을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준비가 방어 전략의 첫 번째 과제가 됩니다.
나. 항거불능의 법리적 한계 — 심신상실에 준하는 기능 결여 상태
준강간죄(형법 제299조)는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 강간과 동일하게 처벌합니다.
헌법재판소(2022. 1. 27.자 2017헌바528 전원합의체 결정)는 ‘항거불능’이란 별다른 유형력 행사가 없어도 침해가 가능할 정도로 피해자의 판단 능력과 대응·조절 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며, 문언상 ‘심신상실’에 준하여 해석되어야 하고 강간죄의 체계와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대법원 역시 항거불능을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일관되게 한정합니다. 성적 자기결정권(거부·회피·중단 요구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능 저하여야 하며, 단순히 술에 취한 상태나 판단이 다소 흐려진 상태는 항거불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리의 핵심입니다.
다. ‘기억이 없다’는 것이 곧 항거불능인가 —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의 구별
상대방이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알코올 블랙아웃(기억 형성 장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법원은 2021년 선고한 세 건의 판결(2018도9781, 2018도7190, 2018도10634)에서 블랙아웃을 ‘단기간 폭음으로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상승할 때 기억 형성 과정이 손상되어 일정 시점의 기억을 상실하는 상태’로 정의하면서, 의식 자체가 소실되는 패싱아웃(의식상실)과 의학적으로 구별되는 별개의 개념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블랙아웃은 당시 의식이 있고 스스로 행동하였으나 그 시점의 기억이 나중에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의식 자체를 잃은 패싱아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대법원은 이를 전제로 3단계 판단 구조를 제시합니다.
① 기억장애만 있는 블랙아웃이었다면 통상 인지기능·의식 상태 장애까지 인정하기 어렵다.
② 다만 의식상실이 아니더라도 알코올로 인해 의사 형성 능력 또는 저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라면 항거불능으로 준강간 성립이 가능하다.
③ 따라서 법원은 음주량·속도·평소 주량·경과 시간뿐 아니라 CCTV·목격진술·만남 경위·장소·사후 정황 등을 종합해 블랙아웃인지, 저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인지를 실질적으로 가려야 한다.
질문하신 사안에서 상대방이 스스로 걷고 대화하며 다음 날 정상적으로 인사 후 헤어진 사정은, 이 3단계 구조의 세 번째 단계에서 블랙아웃 수준에 그쳤음을 지지하는 핵심 사후 정황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라. 무죄와 유죄를 가르는 정황의 차이
하급심 여러 사례에서 ‘블랙아웃일 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항거불능이 곧바로 인정되거나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방식으로 사건별 결론이 갈렸습니다.
무죄 방향으로는 CCTV상 보행·대화·상황 대처가 가능해 보이고 사후 정황까지 종합할 때 저항력 현저 저하 또는 이에 대한 피고인의 인식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사례들이 있는 반면 피해자에게 비정상적 이상행동이 관찰되거나 피고인이 관계 이후 사과 취지의 메시지를 남긴 경우에는 동의 항변의 설득력이 결정적으로 약해진다고 판단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질문하신 사안의 경우 관계 이후 사과 취지의 연락이 없었다면, 이 점을 증거로 명확히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마. ‘이용’ 요건 — 피고인의 주관적 인식 부재를 독립적 방어 논리로
준강간이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 존재만으로는 부족하고, 가해자가 그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기회로 삼아 간음하였을 것, 즉 ‘이용’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관적 요소로, 피고인이 상대방을 항거불능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고의가 부정되어 준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관계 직후 상대방이 정상적으로 대화하고 다음 날 평소처럼 인사 후 헤어진 사정은, 피고인 입장에서 상대방을 항거불능 상태로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합리적 근거가 됩니다.
항거불능 자체의 부정과 함께, 이 ‘이용 인식 부재’를 두 번째 방어 축으로 병행 구성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바. 피고인 측 방어 전략의 구체적 방향
1.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정밀 탄핵해야 합니다. 경찰·검찰·법정 진술조서를 비교 분석하여 핵심 사실관계(장소·시간·행위 경위·상태 인식)에 모순이나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초기 진술에 없던 세부 사항이 법정에서 추가되거나 반대로 초기 내용이 사라지는 경우가 탄핵의 핵심 소재가 됩니다. 고소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를 추적하여 허위 동기의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신빙성 판단 기준(일관성·구체성·경험칙 부합·객관 정황 정합성·허위 동기)을 역으로 적용하는 것이 방어 논리의 틀이 됩니다.
2. 상대방의 기억 공백이 블랙아웃에 불과하며, 패싱아웃이나 저항력 현저 저하 상태에는 이르지 않았음을 정황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스스로 걷고 대화하며 다음 날 정상적으로 인사 후 헤어진 사실은 대법원이 제시한 종합 심리 요소 중 사후 정황에 직접 해당하는 핵심 논거로, 항거불능의 부정 논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3. 간접증거를 최대한 수집하여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술집 결제 내역, 이동 경로 CCTV, 동석자 진술, 통화 기록 등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였다는 정황을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법원은 대법원 기준에 따라 이 정황 증거의 퍼즐을 종합적으로 심리하므로, 선제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법의학 또는 임상의학 전문가 의견서 확보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음주량을 기반으로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하고, 그 수준에서 판단·행동 능력이 유지될 수 있음을 의학적으로 뒷받침하면 저항력 현저 저하 주장을 객관적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을 구별하는 대법원 판단 구조에 직접 대응하는 자료입니다.
5. 이용’ 요건의 고의 부재를 방어의 두 번째 축으로 병행 구성하십시오.
항거불능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와 함께, 설령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가정하더라도 피고인이 그 상태를 인식하고 이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관적 측면의 방어를 병행하면 훨씬 두터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형사 전문 변호사와 함께 다섯 가지 방향을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