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금 엔화·상품권으로 환전해 넘긴 경찰관…법원 “무죄”

검찰 “경찰관이라면 알았을 것” ...
법원 “직업만으로 유죄 추정 못 해”

 

“18년 동안 경찰로 근무했지만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송금받은 돈을 일본 엔화와 상품권으로 바꿔 전달책에게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산의 한 경찰관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을 알았거나 적어도 범죄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부산지법 형사6부는 15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경찰공무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6월 17일 성명불상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피해자로부터 편취한 2166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송금받은 뒤 이를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일본 엔화와 상품권으로 바꿔 전달책 B씨에게 넘긴 혐의를 받았다.

 

당시 부산 영도경찰서 소속 경찰공무원이었던 A씨는 지난해 7월 이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된 뒤 직위해제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당시 신용도가 낮아 대출이 어려웠다”며 “은행원을 사칭한 조직원이 통장에 돈이 들어가면 신용도가 높아져 대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해 그대로 믿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A씨가 18년간 경찰로 근무한 점을 들어 “보이스피싱 범행인 줄 몰랐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보이스피싱 범행을 인식하고 가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돈을 엔화와 상품권으로 바꿔 전달한 행위가 일반적인 금융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해당 돈의 출처가 보이스피싱 범죄수익이라는 점을 A씨가 인식했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보이스피싱 전달책 사건에서는 미필적 고의가 주요 쟁점이 된다.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정체나 전체 범행 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했더라도 “이 돈이 범죄수익일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일을 계속했다면 유죄가 인정될 수 있다.

 

반대로 거래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범죄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

 

사건에서 법원이 주목한 사정은 A씨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A씨는 대출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이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신분증 사진까지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범죄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신분 노출을 피하거나 은밀하게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A씨는 오히려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방식으로 거래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 공무원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퇴직할 수 있는데도 피고인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이스피싱 전달책 역할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해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경찰관이라는 직업만으로 보이스피싱 범행 인식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고인의 직업과 경력은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유죄를 인정하려면 구체적인 대화 내용, 거래 경위, 신분 은폐 여부, 보수 약속, 지시 방식 등 간접사실이 종합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이번 무죄가 A씨의 행동이 적절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자신의 계좌로 타인의 돈을 송금받고 이를 현금, 외화, 상품권으로 바꿔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자금세탁 방식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특히 경찰공무원이었다면 더 높은 주의의무가 요구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면서도 “형사재판의 결론은 도덕적 비난 가능성과 별개로 정해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