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받고 60만원 갚아라”…상품권 거래로 위장한 불법 사금융 기승

상환 못 하면 주거지 방문 등 불법 추심 ...
급전 필요한 판매자 노린 온라인 변종 사채

 

상품권 예약판매를 빙자한 이른바 ‘상품권 사채’ 추심에 시달리던 30대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변종 불법사금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상품권 사채는 상품권을 미리 싸게 파는 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현금을 먼저 건넨 뒤 며칠 뒤 더 큰 금액의 상품권이나 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까지도 ‘5월 28일 발송 상품권 70만원권 50만원에 판매’, ‘상품권 30만원권 20만원에 판매’ 등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이 올라오면 구매자나 업자로 보이는 이들이 댓글에 텔레그램, 라인 등 외부 사회관계망서비스 아이디를 남기며 접근하는 식이다.

 

실제 한 상품권 거래 카페에 판매 글을 올리자 한 구매자는 곧바로 “판매하시면 라인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연락을 요구했다.

 

대화는 일반적인 상품권 거래와 달랐다. 판매자가 “30만원을 받고 5월 31일에 45만원 상당 상품권을 보내겠다”고 하자 상대방은 “30만원을 주고 25일에 54만원을 받는 조건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며칠 만에 30만원이 54만원으로 불어나는 구조였다.

 

상대방은 이후 “사고자만 아니면 기간과 금액을 더 늘릴 수 있다”며 “빌리는 금액의 10%를 이자로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30만원 받고 60만원으로 하자. 기간은 넉넉하게 주겠다. 이자 3만원을 지원하면 사실상 33만원 받고 60만원을 갚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30만원을 받고 45만원 상당 상품권을 보내는 조건이었지만 몇 차례 대화가 오가자 갚아야 할 금액은 60만원까지 늘어났다.

 

30만원을 먼저 받고 단기간 안에 60만원을 돌려주는 구조라면 연이율로 환산할 경우 법정 최고이자율을 훨씬 뛰어넘는 초고금리 거래가 된다.

 

문제는 이런 거래가 단순한 상품권 할인매매인지 사실상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인지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과거 상품권을 할인 매입하고 핀 번호를 넘겨받으면 거래가 끝나는 구조라면 이를 곧바로 대부업법상 금전 대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서는 네이버 카페의 ‘판매가격·판매물품·발송일’ 형식을 빌렸더라도 실제로는 현금을 빌려주고 더 큰 금액의 상품권으로 변제받는 구조라면 무등록 대부업과 제한이자율 초과 수수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명칭보다 실제 거래 구조가 중요하다”며 “상품권 예약판매라는 이름을 붙였더라도 현금을 먼저 지급하고 일정 기간 뒤 원금보다 큰 액수의 상품권을 돌려받는 방식이라면 그 차액은 상품권 가격 차이가 아니라 사실상 이자나 대가로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자들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의 사정을 파고들며 거래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 돈은 처음 차용할 때 돈이 제일 많이 나온다”, “지금 처음이니까 돈을 더 많이 뽑는 게 낫다”는 식으로 재촉하고 카드값 때문에 돈을 빌린다고 하면 “카드값이 얼마냐”,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며 소득과 개인정보를 묻는 경우도 있다.

 

상환일에 약속한 상품권을 보내지 못하면 추심은 더 거칠어진다.

 

상품권 사채 피해자 모임을 운영하는 B씨는 “업자들이 피해자 급여일에 맞춰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며 “급여가 들어오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품권을 발송하지 않으면 2인 1조로 집 앞까지 찾아와 확성기로 ‘사기꾼 나와라’고 외치며 압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B씨는 “한 업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피해자 아버지 사진을 다른 채무자들에게 보여주며 협박 수단처럼 활용하기도 했다”며 “최근에는 경찰 고소까지 동원해 사법 절차 자체를 추심 수단처럼 쓰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추가 발송이나 추가 차용을 반복하기 전에 거래 자료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곽 변호사는 “카페 게시글 원문과 댓글, 외부 메신저 대화, 계좌이체 내역, 상품권 핀번호 요구 내용, 통화녹음, 반복 연락과 협박 정황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두는 것이 필요하다”며 “처음 받은 돈이 얼마였는지, 며칠 뒤 얼마 상당의 상품권을 보내기로 했는지, 기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상환 금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등이 거래의 실질을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방이 같은 방식의 거래를 반복했다면 무등록 대부업 영위와 제한이자율 초과 수수 혐의가 문제 될 수 있고 폭행·협박, 주거지 방문, 가족을 상대로 한 압박이 있었다면 불법 추심 문제도 함께 검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상품권 사채가 외형상 상품권 거래 형식을 띠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초단기 고금리 대출 구조를 갖춘 불법 사금융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