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물러가라” 외쳤던 대학생들…40여 년 만에 줄줄이 무죄

법원 “민주헌정질서 회복 요구한 정당행위”
잇단 무죄에 국가배상금 예산도 조기 소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반대했다가 처벌받은 대학생들이 40여 년 만에 재심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고 있다.

 

법원은 당시 집회와 유인물 배포가 단순한 집시법 위반 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맞선 정당행위였다고 판단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윤영수 판사는 지난달 15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강모씨와 전모씨, 남모씨, 이모씨 등 4명의 재심 사건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강씨 등은 고려대 재학생이던 1981년 5월 교내에서 전두환 정권의 독재성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집회와 시위를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피의 5월을 상기하자’, ‘파쇼타도 민중해방’, ‘전두환 물러가라’, ‘민주농정 실시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대열을 짜 응원가를 부르며 전두환 신군부를 규탄했다.

 

당시 1심은 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고 나머지 3명에게는 각각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이들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들은 사건 발생 44년이 지난 뒤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재심 개시를 결정한 데 이어 무죄 판단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전두환 정권을 비판했다가 처벌받은 다른 대학생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정아영 판사는 지난 14일 계엄법 위반과 집시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됐던 A씨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80년 9월 ‘파쇼 전두환을 타도하자’는 내용의 유인물 150매를 제작하고, 이듬해 4월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맞아 전두환 정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교내 시위를 동료 학생들과 결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에게는 징역 10개월이 확정됐지만 재심 법원은 해당 행위를 범죄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두 재판부의 판단은 전두환 등 신군부의 행위가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전제로 한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17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으로 이어진 신군부의 일련의 행위를 군형법상 반란죄와 형법상 내란죄 등으로 평가했다.

 

재심 법원은 당시 학생들의 집회와 유인물 배포가 헌정질서 파괴 행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였는지를 살폈다.

 

단순히 금지된 집회를 열었는지, 유인물을 배포했는지만 따진 것이 아니라 행위가 이뤄진 시대적 상황과 목적, 동기까지 함께 판단한 것이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나 업무로 인한 행위, 그 밖에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강씨 등과 A씨의 행위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이거나 12·12와 5·18 전후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저지·반대한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재심 무죄 판단에서는 행위의 시기와 동기, 목적, 대상, 사용된 수단, 실제 발생한 결과가 함께 고려된다. 폭력적 위해를 가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군사반란과 내란으로 이어진 국가권력의 위헌적 행사에 항의하고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요구한 행위라면 사회상규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5·18 관련 사건은 일반 형사재심과 다른 절차적 특례가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5·18 관련 행위 또는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특별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일반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특별법에 따라 재심 절차가 열릴 수 있는 구조다. 다만 모든 과거 공안사건이 곧바로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사건이 5·18 특별법상 특별재심 대상인지,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일반 재심 사유를 갖춰야 하는지는 먼저 구분해야 한다.

 

불법구금이나 가혹행위 등 위법수사가 문제 된 사건에서는 수사기관 관계자의 직무범죄가 있었는지, 공소시효가 지나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이를 어떤 자료로 증명할 수 있는지가 재심 개시 단계에서 쟁점이 된다.

 

검찰의 태도 변화도 과거사 재심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재심 청구인이나 유족이 확정판결에 준하는 수준으로 재심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검찰이 직접 과거 수사와 판결 기록을 살펴 위법수사나 판결상 오류를 확인하고 재심 개시 의견을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태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지난달 27일 과거 인권침해 사건 재심 접근 방식 개선 방안을 설명하며 “그동안 청구인의 신청에 따른 재심 사건에서 법적 안정성 확보에 중점을 뒀지만 실질적 정의 실현이라는 재심제도의 또 다른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공안 관련 재심 사건도 빠르게 늘고 있다.

 

연간 접수 건수는 2023년 23건에서 지난해 137건으로 증가했고, 재심 청구 사례도 같은 기간 23건에서 49건으로 늘었다.

 

검찰은 최근 3년간 접수된 청구 218건 중 91건에 대해 재심 개시 의견을 냈고, 재심이 개시된 107건 가운데 63건에 대해서는 무죄 또는 면소를 구형했다.

 

재심 무죄가 확정되면 형사보상과 국가배상 문제도 이어진다.

 

억울하게 미결구금되거나 형을 집행받은 경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국가기관의 위법한 수사나 재판으로 손해를 입었다면 국가배상 청구도 별도로 제기할 수 있다.

 

민주화보상 절차에서 보상결정에 동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 효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도 사안에 따라 따져야 한다.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 사건이 늘면서 올해 편성된 국가배상금 예산은 상반기 만에 소진됐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국가배상금 지급을 위한 예비비 2457억원 지출안을 의결해 추가 재원을 확보했다.

 

법무부는 과거사 피해자들의 신속한 권리구제와 실질적 피해회복을 위해 주요 과거사 사건에서 관행적 상소를 자제해 왔고, 그 결과 국가배상 확정판결과 지급 수요가 함께 늘었다는 입장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국가배상금 지급은 국가의 책임을 이행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책무”라며 “국가배상금 지급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두환 신군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대학생들의 재심 무죄는 오래된 판결을 바로잡는 절차를 넘어 당시 국가권력의 위헌적 행사에 맞선 시민의 저항을 법적으로 다시 평가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과거사 재심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반대한 행위가 뒤늦게나마 정당한 행위로 확인되는 과정을 통해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 사이에서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