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전담부’ 여파에 형사부 기피 심화…원로 법관까지 투입

형사합의부 사건 5년간 72% 급증
서울고법, 업무경감 TF 구성키로

 

내란특검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 운영 이후 서울고법 형사재판부 부담이 커지면서 법원이 이례적으로 법원장급 원로 법관들까지 다시 형사재판에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특정 재판부에 집중되면서 일반 형사부의 사건 부담과 기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최근 김용석 전 서울행정법원장, 성지용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김인겸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형사부에 배치했다.

 

특히 김 전 차장은 고법 형사부장 2년 임기를 마친 뒤 다시 형사부로 복귀한 첫 사례로 알려졌다. 통상 형사부장은 업무 강도가 높아 2년 임기를 마치면 다른 재판 업무로 이동하는 것이 관례로 여겨졌지만 이번에는 이 같은 인사 원칙이 사실상 깨진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란 사건을 담당하는 전담재판부 운영 이후 형사부 기피 현상이 심화하자 법원이 고육지책을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인 형사1부는 별도 사건이 없는 상태다. 형사12부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잇단 기피 신청 등으로 일부 재판만 진행 중이다.

 

반면 다른 형사재판부에는 기존 사건이 재배당되면서 미제 사건 부담이 평균 10건 이상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형사사건 증가세도 뚜렷하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전국 법원 형사합의부 접수 사건은 2020년 1만 5050건에서 지난해 2만 5922건으로 5년간 약 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심 형사합의부 평균 처리 기간도 176.5일에서 206.5일로 늘었다.

 

사건 수가 늘어난 데다 심리해야 할 사건의 복잡성도 커지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판결문의 평균 분량은 2016년 16.55면에서 2024년 21.86면으로 약 32% 증가했다.

 

대형 경제범죄나 권력형 비리 사건의 경우 수만 쪽에 이르는 증거기록을 소수 재판부가 검토해야 하는 상황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부담은 최근 비극적인 사건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6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신종오 서울고법 판사는 법원 청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신 판사는 생전 주변에 업무 부담과 재판 압박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판사가 속했던 서울고법 형사15부는 내란전담재판부가 맡고 있던 기존 사건들을 넘겨받은 데다, 3대 특검법상 이른바 ‘6·3·3 원칙’(1심 6개월·2심 3개월·3심 3개월)에 따라 단기간 안에 재판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며 업무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원 내부에서는 재판 생중계와 온라인 여론 확산으로 판사 개인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도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판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나 표정 하나까지 온라인 콘텐츠로 소비되면서 정치적 공격 대상으로 번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고법은 신 판사 사망 이후 법관 업무 부담 경감과 재판 운영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TF에서는 사건 배당 방식과 신속처리 사건 운영 체계, 법관 업무량 조정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부 부담이 결국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형사재판부 과부하는 결국 재판 지연과 심리 부실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민 입장에서는 신속하고 충실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단순히 법원 내부 인사 문제로만 볼 사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특정 재판부에 집중될 경우 다른 재판부의 업무 불균형이 심화할 수 있다”며 “전담재판부 운영과 함께 인력 충원, 사건 분산 체계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