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수의사회가 동물병원 진료부 공개 의무화에 대해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정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료비 투명성 강화 요구와 별개로 진료부에는 보호자 개인정보, 동물의 병력, 약품명, 투약 용량 등이 포함되는 만큼 공개 범위와 방식부터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한수의사회는 지난 30일 오송 H호텔 세종시티에서 2026년도 제2차 임원 워크숍을 열고 동물 정책 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수의사회는 진료부 공개 의무화와 관련해 “기록을 남기는 의무와 기록을 공개하는 의무는 다른 문제”라며 “약사법 개정, 수의사 처방제 확대, 진료기록 표준화 등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수의사법상 수의사는 동물의 정보, 진료일, 보호자 정보, 병명과 증상, 치료 방법, 처방·처치 내용 등을 진료부에 기록해야 한다. 진료부를 갖추지 않거나 거짓으로 작성하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동물병원 진료비도 일부 항목에 대해 게시 의무가 있고, 정부는 지역별 최저·최고·평균 비용 등을 조사해 공개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진료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이지, 개별 동물의 진료기록 전체를 공개하는 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진료부에는 보호자 개인정보와 동물의 병력, 약품 사용 내역, 투약 정보 등이 함께 담기는 만큼 공개 범위와 방식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무화가 먼저 이뤄질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의계가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동물용의약품 유통 구조다. 현행 약사법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제도를 두고 있지만, 약국개설자는 일정 범위의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부에 기재된 약품명, 용량, 투약 내역이 광범위하게 공개되면 보호자가 이를 토대로 직접 약을 구입해 자가 진료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수의사회의 주장이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소, 돼지, 닭 등 산업동물에서 항생제나 호르몬제가 부적절하게 사용될 경우 동물 건강 문제를 넘어 축산물 안전, 항생제 내성, 토양·하천 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료기록 표준화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쟁점이다.
사람 의료와 달리 동물의료에는 공공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진료항목도 병원별로 차이가 크다. 진료부 작성 방식과 용어, 약품 기재 방식도 통일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 의무만 먼저 부과하면 보호자가 진료 내용을 오해하거나 병원 간 단순 비교 자료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수의사회는 이 때문에 진료부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에 앞서 약사법 개정과 수의사 처방제 확대, 진료기록 표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기록을 남기는 의무와 기록을 공개하는 의무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책임 구조와 의약품 관리 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 의무만 도입하면 동물 진료의 전문성이 훼손되고 오남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로유의 배희정 변호사는 “진료부 공개 의무화는 보호자의 알권리와 진료 투명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공개 대상과 범위, 제3자 제공 기준,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무단 유포에 대한 제재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용의약품 판매 규제와 수의사 처방제, 진료기록 표준화까지 함께 정비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며 “공개 여부만 정할 것이 아니라 의약품 관리, 처방 체계, 진료기록 표준화, 개인정보 보호 장치를 함께 손보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