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투자 사이트에서 실제 증권 거래가 체결되지 않았더라도 일반 투자자가 실제 매매가 이뤄지는 시장으로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췄다면 자본시장법상 무허가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죄단체가입·활동, 사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과 자본시장법 위반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중국인 총책을 정점으로 한 리딩방 투자사기 범죄단체에 고객센터 직원으로 가입해 활동한 혐의를 받았다.
A씨와 조직원들은 2024년 4월부터 7월까지 텔레그램 대화방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하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들은 유망 투자 종목과 매수·매도 시기, 투자 금액 등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조직은 나스닥·코스닥 등 국내외 주가지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한 허위 투자 사이트도 만들었다.
투자자들은 이 사이트에 돈을 입금한 뒤 실제 주식 거래가 이뤄지는 것처럼 매수·매도 주문을 넣었고, 화면에서는 체결 내역과 수익 현황 등이 표시됐다.
1심은 A씨 일당이 투자자 31명으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총 47억2120만원을 가로챘다고 보고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공소장 변경을 거친 항소심은 A씨의 범죄단체 활동 범위를 피해자 42명, 피해액 65억여원 규모로 인정했다. 다만 사기 범행은 피해자 15명, 피해액 29억여원 규모로 한정했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형을 징역 4년으로 낮췄다.
항소심은 허위 투자 사이트가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을 뿐, 범죄조직과 피해자들 사이에서 실제 증권이나 장내파생상품 매매가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투자 사이트는 피해자들을 기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에 불과하고, 피고인 측과 피해자들 사이에 실제 증권 등의 매매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시장을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를 하는 시장’으로 정의한다. 또 거래소 허가 없이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 제373조 제2항 제1호에서 정한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를 하는 시장’에는 실제로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뿐만 아니라,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가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시장도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무허가 금융투자상품시장 개설 행위를 처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지 않고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하는 행위가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하고 투자자 보호 및 자본시장 신뢰성 제고라는 자본시장법의 목적에 위험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고 설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허가 없이 개설된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그 처벌의 본질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특히 “오히려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마치 이루어지는 것 같은 외관을 갖춘 시장을 개설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자자를 속이는 경우 형사 제재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또 “매수·매도와 입출금 기능의 유무, 실제 시세 제공 여부, 시세를 바탕으로 거래가 체결된 것처럼 표시되는 구조, 거래 결과에 따른 수량·가액 표시, 사이트 화면과 기능의 구체성, 실제 참여자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투자 사이트에서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그러한 매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원심 판단에는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