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거나 장시간 대기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국가배상 청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선거관리 과정의 과실로 투표권 행사가 막혔다면 국가가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례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일에 투표용지가 부족해 추가 송부한 투표소는 전국 1만4288개 중 67개소로 파악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35개, 부산 8개, 대구 7개, 인천 6개, 울산 3개, 경남 8개 투표소였다. 서울 송파구가 15개로 가장 많았다. 실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잠시 중단됐다가 재개된 투표소는 22개였다.
쟁점은 투표용지 부족이 단순한 행정 혼선에 그치는지, 아니면 국가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무상 과실에 해당하는지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배상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또 공직선거법 제157조는 선거인이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받은 뒤 선거인명부에 서명 또는 날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도록 정하고 있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이 절차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선거관리 업무의 준비·공급·현장 대응이 적절했는지가 문제가 된다.
투표권 침해 위자료 30만~200만원 인정
2015년 대전지법은 수형인명부에 죄목이 잘못 기재돼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부녀에게 국가가 각각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수형인명부 기재 업무를 담당한 검찰 직원에게 재판 진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전산에 입력해야 할 직무상 의무가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담당 직원이 직무상 의무를 게을리해 원고들이 선거권이 없는 사람으로 잘못 처리됐고, 이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부산고법은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투표 과정에서 필요한 보조를 받지 못한 사건에서도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보조 요청을 거부당하거나 매뉴얼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투표보조가 이뤄진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에게 국가가 각각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이 더 낮게 인정된 사례도 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대구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 A씨는 사진과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이 적힌 시정 모니터 신분증을 제시했다. 해당 신분증은 선거관리 규칙상 신분증명서에 해당했지만, 투표관리관은 확인이 필요하다며 A씨를 기다리게 했다.
그 사이 투표 종료 시각인 오후 6시가 지났고 A씨는 투표하지 못했다.
법원은 A씨의 선거권이 침해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보고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선관위가 사과했고 민원 절차를 통해 일부 조치가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30만원으로 정했다.
이들 판례를 종합하면 투표권 침해 사건의 배상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국가배상을 청구하려면 선거관리 업무상 과실, 투표권 침해, 정신적 손해,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투표 못 한 경우와 장시간 대기는 구분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유권자가 투표 의사를 갖고 투표소에 도착했는데도 투표용지가 없어 투표 절차가 중단됐고, 결국 투표하지 못했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투표는 했지만 장시간 대기한 경우는 판단이 더 복잡하다. 단순한 대기만으로 곧바로 배상 책임이 인정되기는 어렵지만, 투표용지 부족으로 수 시간 동안 투표권 행사가 현저히 방해됐다면 시간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대기 시간, 현장 안내 내용, 투표 중단 시간, 실제 투표 여부가 개별적으로 따져질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는 소송 자체는 가능하지만 실익은 사안별로 달라질 것으로 본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투표소에 제때 도착했는데도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지 못했다면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할 수 있다”며 “다만 투표를 마친 유권자의 장시간 대기 피해까지 어느 범위에서 배상할지는 대기 시간과 현장 상황, 선관위의 조치 등을 개별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판례상 투표권 침해에 대해 3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위자료가 인정된 사례가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도 같은 금액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결국 투표소별 관리 부실과 개별 유권자의 피해 정도가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