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제사건 못 놓는 '범죄사냥꾼'… 이대우 형사과장의 마지막 추적

정년 앞둔 이대우 경정의 37년 형사 인생
시민과 경찰 잇는 '범죄사냥꾼' 26년
"형사는 피해자 눈물 닦는 공인 해결사"
26년 전 분식집 살인사건 아직도 추적

 

서울 서대문경찰서 형사과장실. 정년 퇴임을 일주일 앞둔 이대우(60) 경정의 책상 위에는 마지막 근무일까지의 일정이 빼곡히 적힌 스케줄표가 놓여 있었다. 인터뷰와 강연, 퇴임 관련 일정 사이사이에는 사건 관련 메모도 적혀 있었다. 퇴직을 앞둔 경찰관이라기보다 여전히 사건을 쫓는 형사에 가까웠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이 경정은 1989년 경찰에 입직했다. 형사기동대를 시작으로 강력수사 현장을 누볐고, 37년 동안 범죄자 1000명 이상을 검거했다. 그에게 붙은 별명은 '범죄사냥꾼'이다. 인터넷 카페와 유튜브 채널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MBC '경찰청 사람들', '현장기록 형사', '도시경찰'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형사다.

 

그는 자신의 형사 인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형사는 제 삶의 전부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시작한 스무 살 청년은 어느새 정년을 앞둔 베테랑 형사가 됐다. 그는 "경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형사로 살아온 시간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형사의 존재 이유를 묻자 답은 분명했다.

 

"범인을 잡는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검거만 하는 건 아닙니다. 범죄 현장에서 가장 먼저 피해자를 만나고, 억울함을 풀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도 형사입니다. 저는 그래서 형사를 '공인 해결사'라고 생각합니다."


형사 체험에서 시작된 '범죄사냥꾼'


이 경정은 처음부터 유명 형사는 아니었다. 경찰 생활 초창기 이 경정은 시민들이 경찰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독 차갑다고 느꼈다. 경찰은 시민을 위해 일하는 조직인데 왜 시민들은 경찰을 멀게 느낄까. 고민 끝에 그는 경찰의 문턱이 높고 시민들이 실제 경찰 업무를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0년 5월 26일, 그는 인터넷 카페 '범죄사냥꾼'을 만들었다. 카페 첫 화면에는 "경찰에 대한 편견을 바꿔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그는 다른 카페를 참고해 직접 커뮤니티를 꾸렸다.

 

처음 2년간 카페의 핵심 콘텐츠는 '1일 형사 체험'이었다. 시민들에게 형사들의 실제 업무를 보여줬다. 잠복과 추적, 검거 과정까지 가능한 범위에서 가감 없이 공개했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시민뿐 아니라 기자들도 체험을 원했다. 카페 회원 수는 한때 3만 5000명을 넘었다.

 

이 경정은 "직접 형사 일을 경험한 시민들이 나중에는 경찰의 적극적인 대변인이 됐다"고 말했다. 누군가 경찰을 무조건 비난하면 "직접 경험해보고 하는 말이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생겼다. 경찰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카페는 점차 범죄 피해 상담과 제보 창구로 자리 잡았다.

 

"경찰서 여러 곳을 돌았는데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단서가 보이는 사건들이 있었어요. 나마저 외면하면 그분들의 경찰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성폭력 협박범 잡은 첫 제보 사건


이 경정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건은 한 여대생의 제보였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에 다니던 학생이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려다 조건만남 상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범인은 촬영물을 빌미로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돈이 없으면 사채를 내서라도 가져오라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경찰서에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가족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범죄사냥꾼 카페를 찾았다. 이 경정은 상담 과정에서 범인이 계속 돈을 요구하며 연락을 끊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피해자와 함께 범인을 유인할 계획을 세웠다. 피해자는 범인에게 "사채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며 시간을 끌었다. 중간에는 5만원씩 소액을 보내 범인을 안심시켰다. 마지막에는 "돈을 마련했으니 직접 만나 건네겠다"고 유도했다.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범인은 현장에서 곧바로 검거됐다. 촬영물도 모두 회수했다.

 

"그 사건이 범죄사냥꾼 활동의 사실상 출발점이었습니다. 피해자가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제보가 실제 검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알아보는 불편함보다 얻은 게 많았다"


얼굴이 알려진 형사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경정은 인터넷과 방송 활동으로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잠복수사를 해야 하는 형사에게 얼굴 노출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불편했습니다. 형사는 원래 눈에 띄면 안 되는 직업이니까요. 잠복에는 0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불편함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고 했다. 시민들은 "다른 곳에서는 해결되지 않던 사건도 이 형사에게 가면 들어준다"는 신뢰를 보냈다. 제보가 이어졌고 해결해야 할 사건도 늘어났다. 그는 "남들은 첩보가 없어 수사를 못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늘 사건이 밀려 있었다"고 말했다.

 

범죄사냥꾼 활동을 통해 얻은 제보는 실제 검거로 이어졌고, 함께 근무한 후배 형사 11명이 특진하는 성과도 거뒀다. 무엇보다 경찰을 제대로 알리고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의 수사는 때로 영화 같았다. 인터넷 범죄가 늘자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장물 매입상으로 위장했다. 훔친 물건을 처분하려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값에 사준다"는 문구를 내걸고 연락처를 남겼다.

 

전문 범죄자들은 쉽게 걸려들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범죄자들은 연락해왔다. 전화가 오는 순간부터 수사는 시작됐다. 그는 한 범죄자를 서울역 시계탑 앞으로 유인했고, 장물을 확인하는 순간 현장에서 검거했다. 이후 추궁을 통해 공범과 여죄까지 밝혀냈다.

 

"형사는 범죄가 발생한 뒤 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장 정보원과 시민 제보자, 과거 검거했던 범죄자들까지 수사망으로 연결해야 숨어 있는 범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보험금 살인, 끝내 풀지 못한 사건들


그가 잊지 못하는 사건 중 하나는 보험금을 노린 교통사고 위장 살인 사건이다. 고령 노인을 상대로 세 차례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피해자 2명은 숨지고 1명은 크게 다쳤다. 처음에는 모두 단순 교통사망사고로 처리됐다.

 

하지만 보험사 조사원이 수상한 정황을 발견해 사건을 제보했다. 이 경정은 여러 경찰서에 흩어져 있던 기록을 다시 모아 분석했다. 사고 대상이 모두 고령자였고 보험금 수령 구조도 수상했다. 그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보험금을 노린 고의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판결이 끝난 사망사건은 다시 다투기 어려웠지만 중상해 사건은 남아 있었다. 이 경정과 수사팀은 살인미수와 보험사기 혐의로 수사를 이어갔다. 피의자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반대로 끝내 풀지 못한 사건도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살해한 의혹을 받는 존속살해 사건이다. 어머니는 화재로 숨졌고, 아버지는 11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두 사건 모두 처음에는 변사로 처리됐다.

 

이 경정은 기록을 다시 들여다봤다. 어머니의 몸에서는 졸피뎀이 검출됐고 해당 약물을 딸이 확보한 정황도 확인됐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는데, 딸이 휠체어에 태워 집으로 데려간 날 새벽 추락해 숨졌다. 보험 수익자도 딸 명의로 변경된 상태였다.

 

수사팀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은 불구속 송치됐고 피의자는 도주했다. 현재까지 14년째 행방이 묘연하다. 이 경정은 이 사건을 퇴직 전 반드시 해결하고 싶었던 사건 중 하나로 꼽았다. 서대문서로 옮긴 뒤에도 수사팀을 꾸려 추적했지만 결정적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퇴직하기 전에 꼭 잡고 싶었는데 아직 남아 있습니다."


26년 전 분식집 살인사건의 그림자


그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사건은 26년 전 발생한 분식집 살인사건이다. 작은 분식집에서 주인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1인용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매일 저녁 밥을 먹으러 오던 공사장 인부가 있었는데 사건 당일만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눌린 전화번호도 그의 휴대전화로 연결됐다.

 

당시 이 경정은 수사본부에 투입됐다. 용의자는 알리바이를 댔지만 일부 진술은 깨졌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사건을 놓지 못했다. 지금 다시 기록을 들여다보면 놓쳤던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직접 범행이 아니라 청부살해 가능성까지 따져봤어야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정년을 앞두고도 그는 마지막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용의자를 직접 만나 "나는 당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끝까지 부인했고 오히려 "꼭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경정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렸다.

 

"영화 속 마지막에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 있잖아요. 딱 그런 느낌입니다. 마음 한쪽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끝까지 현장 형사로 남고 싶었다"


이 경정은 정년을 앞두고도 공로연수를 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근무하며 사건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후배들에게 넘겨야 한다. 그는 최대한 많은 자료와 단서를 정리해 인계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범죄 예방의 핵심은 검거보다 빠른 개입이다. 강력범죄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기보다 가정폭력, 스토킹, 학교폭력, 정신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 같은 위험 신호가 누적된 끝에 터지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작은 협박과 반복되는 폭력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에 따른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체제 전환을 앞두고, 이 경정은 현장 인력과 지원 체계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경찰과 검찰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가 돼야 한다고 했다.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 법원은 재판이라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지만 결국 정의를 실현하려면 기관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퇴직 후 계획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다만 후배 경찰 교육과 방송·강연 활동, 범죄 피해자 지원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범죄사냥꾼을 법인 형태로 발전시켜 범죄 피해자와 현장에서 다친 경찰관, 그 가족들을 돕는 일도 고민 중이다.

 

그래도 그의 말은 다시 미제사건으로 돌아갔다.

 

"내 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이 경정의 스케줄은 퇴임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미제로 남은 사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추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