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거부한 공탁, 감형 어려워진다…‘피해 회복’ 심사 강화

양형기준서 ‘공탁 포함’ 문구 삭제
수령 의사·회수 가능성 종합 심사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돈을 공탁했다는 사정만으로 ‘피해가 회복됐다’고 인정받기는 어려워진다.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거나 엄벌을 요구한 경우에는 공탁의 감경 효과도 종전보다 제한될 전망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피해 회복 관련 수정 양형기준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새 기준은 2026년 7월 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된 범죄부터 적용된다.

 

양형위원회는 전체 범죄군의 피해 회복 관련 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35개 양형기준을 수정했다.

 

기존 양형인자에 적혀 있던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 포함)’과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에서 ‘공탁 포함’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공탁금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피해 회복이 이뤄진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공탁 자체가 양형 판단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공탁이 실제 피해 회복에 해당하는지는 피해자의 의사와 공탁금의 회수 가능성, 피해의 성격과 정도 등을 종합해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성범죄 재판에서는 이미 피해자의 의사를 중시해 공탁금 수령을 거부한 경우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참작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정신적 피해는 재산범죄처럼 피해액을 객관적으로 산정하기 어렵고, 금전을 공탁했다는 사정만으로 피해가 회복됐다고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사기·횡령 등 재산범죄에서는 공탁금이 피해액을 실제로 변제할 수 있는 재원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공탁의 감형 효과가 지나치게 축소되면 피고인이 피해 변제에 나설 유인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공탁의 효과를 사실상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피고인은 ‘감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공탁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과정에서 재산범죄 등 다른 사건의 피해 변제까지 위축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습 공탁을 이용한 일방적인 감형은 제한할 필요가 있지만 피해자가 실제로 배상받을 가능성까지 낮춰서는 안 된다”며 “공탁액과 공탁 시점, 피해액에서 공탁금이 차지하는 비중, 피고인의 공탁금 회수 가능성과 피해 회복을 위한 다른 노력 등을 함께 심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재판부에 밝힌 공탁금 수령 거부 의사와 공탁법상 수령 거절 절차가 서로 연동되지 않는 점도 별도의 쟁점이다.

 

현행 공탁법은 피해자가 회수에 동의하거나 공탁소에 수령 거절 의사를 통고한 경우,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등 일정한 사유가 있어야 형사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피해자는 재판 중 수령을 거부했더라도 형 확정 뒤 공탁금을 출급할 수 있는 반면, 피고인은 법정 요건이 없으면 이를 돌려받기 어렵다.

 

곽 변호사는 “재판에서 밝힌 수령 거부 의사와 공탁법상 수령 거절 통고가 별개로 운영되면서 양형 판단과 실제 공탁금 귀속이 달라질 수 있다”며 “피해자에게 두 절차의 차이를 충분히 안내하고, 재판부도 공탁금 회수 가능성과 피고인의 회수 의사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