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두 차례 무단 불출석’ 재판 규칙안 의결

피고인 없이 증거조사와 변론 진행하고 판결 선고
첫 출석 때 주소 신고 의무와 불출석 불이익 고지

 

형사재판 피고인이 재판 지연을 목적으로 공판기일에 반복해서 출석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선고할 수 있게 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7회 대법관회의를 열고 개정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에 필요한 세부 절차를 담은 규칙안을 의결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제1심 공판에 한 차례 이상 출석한 피고인이 이후 공판기일에 정당한 사유 없이 나오지 않으면 법원은 다시 기일을 지정해야 한다.

 

피고인이 새로 지정된 기일에도 무단으로 불출석하면 법원은 피고인의 진술 없이 증거조사와 변론 등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피고인이 변론종결기일에 출석해 선고기일을 직접 고지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피고인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다만 한 차례 불출석만으로 곧바로 궐석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다.

 

피고인이 앞선 공판에 출석해 재판 진행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고, 법원이 다시 지정한 기일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아야 한다.

 

대법원 규칙안은 피고인에게 불출석 재판 가능성을 사전에 알리는 절차도 마련했다.

 

재판장은 인정신문을 마친 뒤 피고인에게 주소 변경 사실을 법원에 신고하도록 명하고, 소재가 확인되지 않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피고인의 진술 없이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해야 한다.

 

그동안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출석이 원칙이어서 소환장을 받고도 고의로 출석을 피하거나 주소 변경 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재판이 장기간 공전하는 문제가 있었다.

 

피고인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송달불능보고서가 접수된 뒤 6개월이 지나야 공시송달을 거쳐 불출석 재판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개정법은 피고인이 이미 법정에 출석해 공소사실과 재판 진행 상황을 알고도 재판을 반복해서 회피한 경우 더 이상 출석만을 기다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사형이나 무기 또는 장기 10년을 초과하는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은 원칙적으로 불출석 재판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사기와 컴퓨터등사용사기 등 법률이 정한 일부 범죄는 법정형이 장기 10년을 넘더라도 불출석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유죄 판단 기준은 달라지지 않는다.

 

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를 심리해야 한다. 변호인이 선임돼 있다면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증거에 관한 의견을 밝히고 반대신문과 변론을 할 수 있다.

 

질병이나 사고, 구금 등 실제로 출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이 정당한 불출석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판단한다.

 

대법원은 허위·조작정보 유통에 따른 가중 손해배상 절차를 정한 정보통신망법 관련 규칙안도 의결했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허위·조작정보라는 사실을 알면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의도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이를 유통한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판과 감시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가중 손해배상 소송은 제한된다.

 

피고는 해당 소송이 언론 보도나 공익적 비판을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법원에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다.

 

중간판결이 신청되면 본안 절차는 일시 중지되며 법원은 신청일부터 60일 안에 소송 남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법원이 공익적 비판이나 감시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소송이라고 인정하면 가중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하고, 그렇지 않으면 신청을 기각한 뒤 본안 심리를 계속한다.

 

대법원은 규칙안에 중간판결 신청의 심문 절차와 본안 소송 중지 방식, 청구 각하 판결의 공표 절차 등을 담았다.

 

이날 대법관회의에서는 법원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규칙과 집행관 규칙, 집행관 수수료 규칙, 법원공무원규칙 개정안 등 모두 7건의 안건이 의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