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동대문사단’ 계승한 MZ 조폭 40명 검거…14명 구속

중·고교 ‘짱’ 출신 16명 영입…가슴에 ‘東大門’ 문신 강요
야쿠자식 90도 인사·패싸움 동원…보이스피싱 정황도 수사

 

1950년대 정치깡패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을 계승한다며 조직원을 끌어모으고 수도권 일대에서 집단폭행과 패싸움을 벌여온 20·30대 조직폭력배 40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2계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단체 등의 구성·활동과 공동폭행 등의 혐의로 동대문파 조직원 21명과 상계파·이태원파·이글스파 조직원 19명 등 40명을 검거했다고 23일 밝혔다.

 

동대문파 행동대장 A씨 등 14명은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고 나머지 동대문파 조직원 7명은 불구속 송치됐다. 검거된 조직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동대문파 조직원들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불리던 후배들에게 “우리는 해방 이후 이정재 회장으로부터 내려오는 근본 있는 조직”이라며 가입을 권유했다. 이들은 “문신을 하고 다닐 거면 정식으로 생활하라”고 조직 생활을 종용했고, 후배 16명이 실제로 가입했다.

 

 

이들이 계승한다고 내세운 이정재는 해방 이후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세력을 키운 폭력조직 두목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 자유당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폭력을 행사해 대표적인 정치깡패로 불렸다.

 

그는 5·16 군사정변 이후 사형을 선고받아 1961년 처형됐다.

 

1950~60년대 서울에서는 김두한의 종로파와 이정재의 동대문파, 이화룡의 명동파가 세력 경쟁을 벌였다. 이번에 검거된 조직원들은 자신들을 당시 동대문사단의 후예로 규정하며 조직의 정통성을 강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이정재 추모제까지 열었다.

 

초청장에는 “이정재 회장을 뵌 적은 없으나 같은 길을 걷던 대선배님”이라며 “조직폭력배가 어떻게 멋지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보여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초청장에는 이정재의 이름을 ‘이정제’로 잘못 적었다.

 

동대문파는 서울 전역과 인천 서구에 합숙소를 마련하고 중간 간부를 합숙소장으로 둔 뒤 신규 조직원들에게 위계질서와 행동강령을 가르쳤다.

 

행동강령에는 ‘동대문사단 이정재의 정신을 계승한다’, ‘몸에 조직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다’, ‘선배의 명령은 반드시 이행한다’, ‘조직 이탈자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입 조직원은 선배를 ‘형님’, 자신을 ‘동생’이라고 지칭하고 말을 할 때마다 문장 끝에 “말씀입니다”를 붙여야 했다. 양 무릎에 손을 짚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일본 야쿠자식 인사를 하고, 선배의 허락 없이는 담배도 피우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슴 한가운데에는 조직 이름인 ‘東大門’을 한자로 문신하도록 했으며, 규율을 어긴 조직원은 폭행을 당했다.

 

합숙 생활을 마친 조직원은 조직 행사에서 도열해 세력을 과시하거나 다른 조직과 분쟁이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는 이른바 ‘비상 타격대’ 역할을 맡았다.

 

구속된 조직원에 대해서는 당번을 정해 접견하고 영치금과 형사합의금, 변호사 비용을 지원했다. 수배나 재판, 해외 체류 중에도 조직원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참석하도록 하는 등 결속을 유지했다.

 

조직원들은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여러 차례 집단폭행과 패싸움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행동대장 A씨는 2020년 12월 수원 인계동에서 지역 폭력조직원과 시비가 붙자 후배 조직원 4명을 소집해 상대 조직원 10여명과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

 

2023년 9월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회식 자리에서 다른 조직원이 동대문파 간부의 어깨를 치고 자리를 떠나려 하자 뒤쫓아가 집단폭행했다.

 

올해 2월에는 다른 조직원들이 자신들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연합 관계인 상계파와 이태원파, 이글스파 조직원들을 불러 패싸움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에게 폭처법상 공동폭행 혐의도 적용했다.

 

동대문파가 폭력행위뿐 아니라 보이스피싱과 개인정보 매매, 투자리딩방 운영 등을 통해 조직 자금을 마련한 정황도 확인됐다.

 

일부 조직원들은 2013년부터 중국 칭다오에 보이스피싱 합숙소를 차리고 국내에서는 대포통장과 현금 수거책을 관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에는 다른 폭력조직과 함께 개인정보를 사고팔거나 투자리딩방 사무실을 운영한 정황도 드러나 경찰이 조직 차원의 개입 여부와 범죄수익 흐름을 수사하고 있다.

 

동대문파는 1990년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이후 사실상 해체됐지만, 1996년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을 계승한다는 지역 불량배들이 다시 모여 조직을 결성했다.

 

이들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 중부권 노점상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했고, 2011년에는 상가 재건축 이권에 개입하거나 강북권 조직과 패싸움을 벌여 일부 조직원이 처벌받았다.

 

그동안 개별 조직원들이 폭행이나 갈취 혐의로 처벌된 사례는 있었지만 동대문파 자체가 폭력범죄단체로 인정된 적은 없었다.

 

경찰은 지난해 2월 동대문파 조직원들이 다른 조직원을 집단폭행하는 영상을 확보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영상 속 인물의 신원을 특정하고 활동 지역과 연락 관계, 합숙소 운영, 조직 행사 등을 추적했다.

 

폭력범죄단체 혐의를 적용하려면 개별 범행뿐 아니라 조직의 지휘·통솔체계와 행동강령, 역할 분담, 연락망, 지속적인 결합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경찰은 200건이 넘는 통신·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약 2년간 폐쇄회로(CC)TV 영상과 통신 내역, 조직 행사 사진 등을 분석했다. 수사 기록은 95권, 약 2만5000쪽에 달했다.

 

동대문파는 지난해 서울 서남권 폭력조직 진성파 조직원들이 대거 검거되자 합숙소를 폐쇄하고 조직원들을 흩어져 생활하게 했지만, 경찰은 이들이 합숙소 폐쇄 이후에도 지시와 보고 체계를 유지하며 조직 행사와 경조사, 집단폭행에 함께 참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1996년 결성된 조직과 현재 활동한 동대문파 조직원들이 동일한 계보와 규율을 이어온 ‘계속적 결합체’라고 판단해 폭처법상 단체 등의 구성·활동 혐의를 적용했다.

 

폭력범죄단체 간부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일반 조직원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개별 폭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조직에 가입하거나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실만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이 파악한 동대문파 전체 조직원은 75명이며, 이번에 검거된 21명은 실제 조직 활동을 주도한 핵심 세력으로 조사됐다. 두목과 원로급 조직원들은 별다른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고 조직 경조사 등에 제한적으로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배은철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2계장은 “개별 폭행과 갈취 사건을 연결해 지속적인 위계와 단체성을 갖춘 조직의 전모를 확인했다”며 “폭력범죄단체로 인정되면 가입하거나 활동한 사실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층이 조직폭력배가 되면 외제차를 타고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합숙소에서 폭행당하고 밤낮없이 비상소집에 응해야 한다”며 “탈퇴 과정에서도 보복당할 수 있는 만큼 조폭 생활에는 낭만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