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건] 교정위원 명함이 납품 통로로… 교도소 생수 비리 사건

 

여름철이면 교정시설에는 외부 봉사단체가 기부한 얼음물과 생수가 들어온다.

 

냉방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수용동에서 물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무더위를 견디기 위한 필수품에 가깝다.

 

지금은 수용자들이 생수를 자비구매물품으로 살 수 있지만, 과거에는 취사장에서 수백 명이 마실 물을 한꺼번에 끓여 각 수용동에 공급했다.

 

자비구매물품은 교정시설 수용자가 국가에서 지급하는 물품 외에도 속옷과 세면용품, 식품 등을 자신의 돈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수용자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물건이나 교도소 안에서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품목의 필요성과 수용자 선호도, 가격과 품질, 보관 가능성, 안전성 등을 검토한 뒤 자비구매물품으로 지정해야 한다.

 

전국 교정시설은 외부 시장과 달리 경쟁이 제한돼 있어 신규 품목으로 지정되는 것 자체가 업체에는 상당한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2013년을 전후해 교정시설의 식수 공급 방식이 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폐쇄된 시장을 둘러싸고 고위 교정공무원과 교정위원, 납품업체가 얽힌 청탁 사건이 발생한다.

 

 

2013년 당시 교정행정을 총괄하던 교정본부장 A씨에게 오랜 지인 L씨가 찾아왔다.

 

L씨는 생수와 양념꽁치, 양념소스를 교정시설에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4년 무렵 교정 현장에서 시작됐다. 지방교정청 과장이던 A씨는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던 L씨를 알게 됐고, 이후 구치소장으로 부임하면서 해당 구치소 교정위원 조직의 회장이던 L씨와 친분을 쌓았다.

 

교정위원은 수용자를 상담하고 출소자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민간 봉사자다.

 

상당수는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교정시설을 돕지만, 일부는 교정위원이라는 지위로 쌓은 인맥을 사업에 이용하기도 했다.

 

L씨의 부탁을 받은 A씨는 담당 사무관에게 생수를 신규 자비구매물품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실무자들의 판단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교정시설은 물을 끓여 수용자에게 공급하고 있어 식수 부족 문제가 없었고, 해외에서도 캐나다를 제외하면 교정시설에서 생수를 판매하는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정작 수용자들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전국 교정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생수 판매를 희망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실무자는 필요성이 낮은 생수를 판매하면 “교정시설에서 식수까지 사 먹게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생수 도입 검토는 이 단계에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담당 사무관이 인사로 교체되자 A씨는 후임자에게 납품업자를 직접 만나도록 지시했고, 전화번호까지 건네며 민원을 들어보게 했다.

 

이후 교정본부는 자비구매물품 지정과 입찰 업무를 대행하던 교정 관련 법인에 생수와 양념꽁치, 양념소스를 신규 품목으로 정해 승인 신청을 올리도록 요구했다.

 

법인 측은 절차상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공식 공문을 요청했지만, 교정본부는 문서로 지시를 남기지 않은 채 승인 신청만 계속 요구했다.

 

교정본부의 지도·감독을 받는 기관이 본부장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법인은 결국 각 교정시설 소장의 의견과 수용자 선호도 조사를 생략한 채 3개 품목을 신규 자비구매물품으로 올렸고, A씨는 이를 승인했다.

 

그해 12월 입찰이 진행되자 A씨에게 납품을 부탁했던 L씨 측이 생수와 양념꽁치, 양념소스 3개 품목을 모두 낙찰받았다. 수용자의 필요를 검토해야 할 품목 선정 절차가 특정 업체의 전국 교정시설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공급을 결정한 뒤 실시한 만족도 조사


생수 등이 공급된 뒤 교정본부와 관련 기관은 뒤늦게 시범 공급과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신규 품목으로 지정하기 전에 거쳤어야 할 절차를 납품이 시작된 뒤 진행한 것이다.

 

양념꽁치의 경우 공급을 희망한 수용자는 45%에 불과했다. 담당 사무관은 공급 중단을 건의했지만, A씨는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계속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몇 년 뒤 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A씨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이를 정책적 판단이나 적극행정이 아니라 교정본부장이 자신의 직무상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지인의 납품 청탁을 관철한 직권남용으로 판단했다.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2019년 5월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오랜 공직 경험을 가진 고위공무원으로서 관련 절차를 지켜야 했는데도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지인의 청탁을 관철했다고 지적했다.

 

생수 등의 지정을 청탁했던 L씨도 알선수재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쌓은 인맥이 교정시설 납품을 위한 자산으로 사용된 셈이다.


국회의원 부탁에 뒤집힌 한과 검토


비슷한 시기 후임 교정본부장 B씨도 자비구매물품 선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

 

전남에서 한과업체를 운영하던 C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국회의원에게 교정시설에 한과를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국회의원은 2014년 9월 당시 교정본부장이던 B씨에게 한과를 자비구매물품으로 선정할 수 있는지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 또한 수사가 시작되었고 법원은 B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지는 않았지만, 교정행정을 총괄하는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실무자들의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관련 기관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비리로 시작해 교정시설에 정착한 생수


두 사건은 품목과 청탁 경로만 달랐을 뿐 구조는 같았다.

 

교정위원이나 국회의원과의 인맥을 통해 고위 교정공무원에게 접근하고, 실무자의 반대와 수용자 선호도 조사, 교정시설 의견 수렴을 건너뛴 뒤 특정 업체에 유리한 방식으로 신규 품목 지정과 입찰을 진행했다. 

 

그 부담은 교정시설 안에서 다른 판매처를 선택하기 어려운 수용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자비구매물품은 교정공무원이 아니라 수용자가 자신의 영치금으로 사는 물품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부당한 청탁으로 시작된 생수 판매가 이후 교정시설에 정착했다는 데 있다.

 

과거 취사장에서 수백 명이 마실 물을 끓여 공급하던 방식은 사라졌고, 이제 생수는 여름철 수용생활에서 빼놓기 어려운 물품이 됐다.

 

수많은 교정위원이 대가 없이 수용자의 교화와 사회복귀를 돕고 있지만, 일부가 그 지위로 쌓은 인맥을 납품이나 사업에 이용하면 제도 전체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교정위원의 명함은 교정시설 사업을 위한 출입증이 아니다. 봉사로 얻은 신뢰가 납품 청탁의 통로로 바뀌는 순간 피해를 보는 것은 수용자와 교정행정뿐 아니라 묵묵히 활동해 온 다른 교정위원들의 명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