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확인 없이 전세계약서 써준 공인중개사…대법 “대출사기 방조 책임”

임대인 의사·대리권 확인할 서류조차 살피지 않아
“허위 계약서 이용, 편취 용이하게 한 방조행위”

 

임대인과 임차인의 신원과 대리권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전세계약서를 작성해 준 공인중개사에게도 대출사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대부업체 A사가 공인중개사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는 2020년 11월 임대인과 임차인 양측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한 C씨의 말만 믿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해 교부했다.

 

B씨는 계약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았고, 실제 임대인의 의사나 C씨의 대리권을 확인할 수 있는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등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C씨는 전세계약서를 이용해 같은 해 12월 A사에서 전세보증금 담보 명목으로 1억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870여만원만 갚은 뒤 2021년 7월부터 원리금을 변제하지 않았다.

 

A사는 2024년 9월 B씨가 실제 중개행위 없이 C씨의 말만 믿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해 준 탓에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B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인중개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가 통상 임대차계약 당사자, 특히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출업체인 A사까지 보호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B씨가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위반했더라도 그 행위와 A사의 대출금 손실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의 행위가 C씨의 대출금 편취 범행을 쉽게 만든 방조행위로 될 수 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공인중개사가 실제 중개행위 없이 전세계약서만 작성해 교부한 것은 공인중개사법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며 “그 계약서를 믿고 가장 임차인에게 대출을 실행한 A사가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면 손해 발생과의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B씨는 쌍방 대리인을 자처하는 C씨의 말만 믿고 임대인과 임차인을 대면하지 않은 채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며 “임대인의 의사와 C씨의 대리권을 확인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B씨의 책임 범위는 제한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B씨 역시 C씨 일당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에 속아 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B씨에게 과실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사유로 참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