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에 ‘반쪽 문서’ 제출…‘소송사기’ 성립할까

일부 불리한 자료 미제출만으로 처벌 어려워
재판 결과 바꿀 중요 내용 숨겼다면 기망행위 가능
기수 성립에는 재산상 이익 취득까지 입증해야

 

민사소송이나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문서 앞부분만 제출하고, 그 의미를 뒤집을 수 있는 뒷부분을 의도적으로 제외해 법원으로부터 유리한 결정을 받았다면 소송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소송사기는 법원을 속여 자신에게 유리한 재판을 받은 뒤 상대방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다.

 

다만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상대방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소송사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민사소송 당사자에게 불리한 자료까지 모두 스스로 제출해야 할 일반적인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러 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문서 가운데 일부만 제출하면서 이를 완전한 문서인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누락된 내용과 배치되는 주장을 해 문서 전체의 의미를 왜곡한 경우다.

 

실제로 최근 한 민간단체 대표 A씨는 부정청탁에 따른 알선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내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A씨는 징계 절차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소명했고, 징계위원회는 징계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행위의 부적절성을 지적해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는 A씨가 과거 부정청탁에 따른 알선행위 처벌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회원 B씨는 징계 회부 경위와 주의 처분, 경찰 수사 결과 등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하며 A씨의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A씨는 게시글이 허위라며 법원에 게시물 삭제와 게재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A씨는 가처분 절차에서 6장짜리 징계 문서 가운데 징계 청구 기각 결론이 담긴 앞부분 3장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출하지 않은 뒤쪽 3장에는 구체적인 조사 결과와 주의 처분 사유가 담겨 있었고, B씨가 게시글에 적은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A씨는 이후 주변 사람과 단체 회원들에게 “법원도 상대방의 게시글이 허위라고 인정했다”고 알렸다.

 

A씨가 제출한 자료가 전체 문서 중 일부라는 사실을 법원에 분명히 밝혔다면, 문서 뒷부분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소송사기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반면 A씨가 전체 문서를 보유하고도 뒤쪽 내용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채 앞부분을 완전한 징계 결정문처럼 제출했다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누락된 내용이 가처분 신청의 인용 여부나 결정 범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했는지도 주요 판단 요소가 된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A씨가 문서의 나머지 내용을 알고도 법원을 적극적으로 기망했는지가 중요하다”며 “법원이 일부 문서를 전체 문서로 오인해 판단했다면 문서 누락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정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리한 가처분 결정만으로 소송사기 성립되나


다만 유리한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소송사기죄가 곧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소송사기 기수가 성립하려면 신청인이 해당 결정을 통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실제로 취득했는지를 별도로 따져야 한다.

 

A씨가 가처분 결정을 근거로 “법원이 게시글을 허위로 인정했다”고 주변에 알렸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형법상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시물 삭제나 게재 금지 가처분은 본안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임시로 권리관계를 정하는 절차다. 가처분이 일부 인용됐다고 해서 게시글의 모든 내용이 허위라고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반면 가처분을 통해 상대방의 영업이나 경제활동을 제한하고, 자신은 대표 지위나 알선행위를 계속 유지해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을 확보했다면 소송사기 기수 성립 여부가 문제 될 수 있다.

 

재산상 이익을 실제로 취득하지 못했더라도 불완전한 문서를 완전한 문서처럼 제출해 법원이 사실과 다른 판단을 내리도록 했다면 소송사기 미수죄가 성립할 가능성도 있다.

 

법원을 상대로 한 기망행위는 당사자 사이의 분쟁을 넘어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불리한 자료를 단순히 제출하지 않은 행위와 문서 일부만을 이용해 전체 사실관계를 왜곡한 행위는 구별해야 한다.

 

재판 결과를 바꿀 목적으로 문서의 결정적인 부분을 숨겼다면 수사를 통해 기망의 고의와 재판 결과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 변호사는 “고소 단계에서는 빠진 부분이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라 재판부의 판단을 달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이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며 “전체 문서와 가처분 기록을 대조해 어떤 내용이 누락됐고, 그 누락이 법원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