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사실적시 명예훼손 손질…'사생활 중대 비밀'만 처벌 추진

與 민병덕, 형법 개정안 대표 발의
공익성 대신 ‘사생활’이 판단 기준

 

사실을 공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적용 범위를 개인의 중대한 사생활 침해로 제한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형법은 공개한 내용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신문·잡지·라디오 등 출판물을 이용했다면 형법 제309조에 따라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형법 제310조는 적시한 사실이 진실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공개된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행위의 목적과 수단, 공개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

 

개정안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적용 범위를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공개한 경우로 좁히는 내용이다. 사실 공개로 상대방의 명예가 훼손됐더라도 해당 정보가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도록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의 사실 공개 여부와 공익성 여부가 핵심 판단 기준이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개된 정보가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인지가 우선 판단 대상이 된다.

 

개인의 성생활이나 질병, 가족관계 등 사적인 정보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권력형 비리나 공적 인물의 비위,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사실은 사생활의 중대한 비밀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진다.

 

민 의원은 현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악의적으로 유포되는 것을 막아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권력자의 비리나 유명인의 부도덕한 행위 등 공익을 위한 정당한 폭로마저 위축시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라"며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 걸 가지고 명예훼손이라고 한다. 민사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주문했다.


헌재 5대 4 합헌…양육비 사건 재조명도


2021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한 사실을 공개하는 행위도 일정 범위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수 의견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하는 수단이며, 형법 제310조가 공익 목적의 사실 공개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재판관 4명은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같은 해 해당 조항이 공익적 문제 제기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한 시민단체 '양육비를 해결하는 사람들' 사건이 꼽힌다.

 

단체 운영자 구본창씨는 법원의 판결이나 조정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이름과 사진 등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공론화하고 지급 의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구씨 측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단순한 부모 간 갈등이 아니라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사회 문제라고 주장했다. 반면 신상이 공개된 당사자들은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게시되면서 명예가 훼손됐다며 구씨를 고소했다.

 

1심은 구씨의 행위에 공익성이 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고 미지급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려는 목적이 컸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더라도 개별 당사자의 사진과 이름, 직업 등 신상정보를 공개한 방식에는 이들을 비난하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포함됐다고 봤다. 항소심은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고, 2024년 1월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 같은 사건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에 해당하는지가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