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이 꺼졌다면 내가 죽었다”…군산 교제폭력 사건 국회 토론회 열려

교제폭력 공백…별도 법률 마련돼야
상고취하 착오, 절차적 한계 드러나

 

군산 교제폭력 사건을 계기로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체계와 정당방위 판단 기준, 관련 입법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28일 여성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실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31번 신고해도 막지 못한 교제폭력,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의 출발점이 된 군산 교제폭력 사건은 지난해 5월 수년간 연인의 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여성 A씨가 전북 군산시 한 주택에 불을 질러 남자친구 B씨를 숨지게 한 사건이다.

 

A씨는 사건 당일 뺨을 수차례 맞고 목이 졸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휴대전화까지 빼앗긴 채 차량 없이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외딴 주택에 고립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씨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장기간 이어진 폭력 피해를 양형에 반영해 형량을 징역 10년으로 낮췄지만, A씨 측의 정당방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이 확정된 A씨는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방화치사 사건이 아니라 반복된 신고에도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하지 못한 보호체계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교제 기간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모두 31차례였다. 이 가운데 23건은 폭행과 상해, 특수협박, 주거침입 등 형사사건으로 접수됐지만 상당수는 처벌불원이나 공소권 없음 등을 이유로 종결됐다.

 

B씨는 특수상해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지난해 5월 출소했고, 출소 일주일 만에 A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가 화재가 발생했다.

 

군산 교제폭력 사건 항소심에서 A씨의 국선변호인을 맡았던 이한선 변호사는 “이 사건은 방화치사 사건이기 전에 우리 사회가 5년 동안 31번의 신고를 받고도 구하지 못한 교제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사건 당시 A씨가 “그 불이 꺼졌다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5년간 피해자였던 사람이 결국 피고인이 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반복된 신고가 피해자 보호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피고인은 계속 신고했지만 신고가 무력화되는 경험을 반복했다"며 "국가와 경찰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쌓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왜 헤어지지 않았느냐', '왜 다시 찾아갔느냐'는 질문이 반복된다"며 "장기간 폭력과 통제를 겪은 피해자의 현실보다 피해자 개인의 선택에 책임을 묻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112 신고는 2020년 4만 9225건에서 2023년 7만 7150건, 2024년 8만 8394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0만 5344건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연간 10만 건을 넘어섰다. 5년 사이 약 2.1배 늘어난 것으로, 하루 평균 약 289건, 약 5분마다 한 번꼴로 신고가 접수된 셈이다.

 

그럼에도 현행 법체계는 교제폭력의 지속성과 강압적 통제라는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변호사는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족관계를 전제로 하고, 스토킹처벌법 역시 교제폭력 전반을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친밀한 관계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강압적 통제를 별도로 다룰 수 있는 교제폭력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A씨가 대법원의 실체 판단을 받지 못한 경위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A씨는 항소심 선고 직후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전주교도소에서 군산교도소로 이감된 직후 교도관이 제시한 상고취하서를 이감 절차에 필요한 일반 서류로 오인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고 취하 철회와 상고절차 속행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법원도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항소심 판결은 상고심 심리 없이 확정됐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사법적 구제의 통로 자체가 온전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도 함께 짚어야 한다"며 "정신질환으로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 있던 피고인에게 상소권 상실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단 한 장의 서면 착오로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정당방위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실체적 재검토 기회조차 거치지 못한 채 확정됐다"며 "특별사면은 사법부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시민을 다시 처벌하는 결과를 멈추기 위한 최소한의 정의 회복 조치"라고 밝혔다.

 

허 연구관은 정당방위 판단 역시 폭행 직전의 순간뿐 아니라 장기간 반복된 폭력과 강압적 통제의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해자가 잠시 잠들었거나 폭행을 멈췄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피해자는 다음 폭력이 언제 시작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에게 왜 관계를 끊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은 교제폭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접근"이라고 덧붙였다.

 

교제폭력 대응을 위한 입법 논의가 장기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허 연구관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교제폭력 대응을 위한 법안이 16건가량 계류돼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른 현안에 밀려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교제폭력을 스토킹처벌법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허 연구관은 "스토킹처벌법의 잠정조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강압적 통제가 핵심"이라며 "별도의 법률을 통해 그 특성을 반영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복 신고 사건은 개별 사건으로 종결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위험성 재평가와 다기관 개입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