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건] 한 통의 옥중편지가 밝힌 택배방화 사주사건

미제로 남은 망치 습격·무주 방화까지 연결
“다시 살자”는 약속 뒤 범행 교사

 

한때 연인이었던 사람이 “이 일만 해결해주면 다시 함께 살자”고 약속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한 남자는 수감 중 보낸 편지에서 그 약속을 믿고 생면부지의 사람을 쇠망치로 내리쳤으며, 한밤중 전북 무주까지 찾아가 차량에 불을 지르고 아무런 원한도 없는 택배기사의 화물차까지 태웠다고 자백한다.

 

2024년 10월 4일 새벽 경기 화성의 한 택배 물류센터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화재와, 수감자가 보낸 한 통의 편지로 그보다 앞서 벌어진 범행들까지 드러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일 물류센터 주변에는 여러 대의 차량이 세워져 있었지만 불이 난 것은 택배기사 D씨의 화물차뿐이었다.

 

경찰은 누군가 특정 차량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추적했다. 그 결과 화재가 발생하기 전 차량 주변을 여러 차례 오가며 불을 붙이려 한 A씨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나 A씨와 D씨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였고 금전 관계나 개인적인 원한도 없었다.

 

경찰에 붙잡힌 A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다. 이후 자동차 방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복역 중 피해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A씨는 편지에서 D씨의 화물차에 불을 지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혼자 계획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신에게 범행을 부탁한 사람은 과거 연인 관계였던 B씨였으며, D씨의 차량 방화뿐 아니라 앞서 택배업계 관계자 C씨를 쇠망치로 공격하고 전북 무주에서 차량에 불을 지른 범행도 모두 B씨의 요구에 따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수사기관이 서로 관련 없는 사건으로 보고 있던 망치 습격과 두 차례의 방화가 A씨의 편지 한 통으로 연결된 것이다.

 

A씨와 B씨는 2022년 여름 처음 만나 그해 8월부터 교제했다. 교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과거 일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재판을 받다가 법정 구속됐다.

 

가족과 지인의 발길이 끊긴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A씨에게 B씨는 거의 매일 접견을 오고 편지를 보내며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에게 B씨는 세상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을 때도 곁을 지켜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감 생활을 버티게 해준 B씨에게 출소한 뒤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교도소 밖으로 나온 뒤 B씨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A씨가 여러 차례 만나자고 해도 B씨는 연락을 피하거나 만남을 거절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던 2024년 6월 26일 B씨가 돌연 A씨에게 연락해 자신이 일하던 택배 영업소 인근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B씨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 싫어서 헤어진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다시 함께 살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고, 자신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자신이 시키는 일을 모두 해주면 다시 함께 살고, 범행이 드러나 A씨가 교도소에 들어가더라도 혼인신고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몸이 아픈 A씨의 부모도 자신이 돌보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A씨는 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기대와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고 B씨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B씨가 처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지목한 사람은 과거 동업 관계였던 C씨였다

 

. B씨와 C씨는 택배 관련 사업을 함께했지만 정산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C씨는 B씨와 그의 아버지를 상대로 총 3억6000만원 상당의 정산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사업상 다툼은 법정 분쟁으로 번졌고 두 사람의 관계도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돼 있었다.

 

반면 A씨는 C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만나본 적도 없고 개인적인 원한을 품을 이유도 없었지만, B씨에게서 C씨의 거주지와 이동 동선을 전달받은 뒤 쇠망치를 준비해 집 앞에서 기다렸다.

 

이후 C씨가 나타나자 뒤에서 접근해 쇠망치로 후두부를 내리쳤고,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C씨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충격으로 기억 일부를 잃을 정도의 피해도 입었다.

 

그러나 현장에는 범행 장면을 제대로 촬영한 CCTV가 없었고 목격자도 찾기 어려웠다. C씨 역시 뒤에서 공격을 당해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A씨와 C씨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었고 범인을 특정할 단서도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망치 습격 이후에도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B씨는 C씨가 명절이면 부모가 사는 전북 무주를 찾는다는 사실과 현지 이동 동선을 A씨에게 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실제로 C씨 부모의 거처가 있는 지역까지 찾아가 차량에 불을 질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쇠망치로 공격당한 데 이어 가족의 생활 터전 가까이에서 화재까지 겪은 C씨는 극심한 신변 위협을 느꼈다. 그는 또다시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차량에 호신용품을 넣어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사기관은 무주에서 발생한 차량 화재를 앞선 망치 습격과 연결하지 못했다.

 

두 범행을 실행한 A씨와 피해자 C씨 사이에 원한이나 금전 관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동일인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범행을 반복했을 가능성까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B씨가 갈등을 겪던 사람은 C씨뿐만이 아니었다. B씨가 운영하던 택배대리점 소속 기사 D씨는 2024년 4월 노동조합에 가입한 뒤 자신의 택배차량에 B씨와 대리점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달고 다녔다.

 

B씨는 D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수수료와 노조 활동을 둘러싼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A씨는 2024년 10월 4일 새벽 경기 화성의 택배 물류센터 인근에 세워져 있던 D씨의 화물차에 불을 질렀다.

 

이번에는 CCTV에 A씨가 방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으면서 경찰이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다.

 

자동차 방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A씨가 교도소에 들어간 뒤에도 B씨가 약속했다는 혼인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A씨의 부모를 돌보겠다는 말 역시 지켜지지 않았고, B씨는 자신과 범행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 함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A씨의 기대는 수감 이후 하나씩 무너졌다.

 

A씨는 복역 중 피해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 처벌받은 D씨의 화물차 방화만으로 사건을 끝낼 수도 있었지만, 앞선 범행을 숨긴 채 두면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고 적었다.

 

 

그는 C씨를 공격한 장소와 방법, 무주까지 이동한 과정, B씨에게 전달받았다는 피해자들의 주소와 동선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A씨의 자백은 자신의 처벌을 더 무겁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미 처벌받은 자동차 방화 외에 쇠망치를 이용한 공격과 추가 방화가 드러날 경우 새로운 혐의로 다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수사기관이 알지 못했던 범행까지 털어놨고, 피해자들은 편지를 근거로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다만 A씨의 자백을 오로지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편지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B씨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이 반복적으로 드러났고, 자신을 이용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여전히 B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미련이 남아 있었다.

 

A씨는 모든 범행이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B씨의 약속과 유혹에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B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우리가 벌인 일은 벌을 받자. 널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말을 남겼다.

 

피해자들의 재수사 요청을 받은 경찰은 C씨를 상대로 한 망치 습격과 무주의 차량 방화, D씨의 택배차량 방화 사건을 다시 살펴봤다.

 

그동안 별개로 흩어져 있던 사건들은 하나의 범행 구조로 연결됐고, 수사 결과 B씨는 살인미수교사와 살인예비, 일반자동차방화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B씨는 수사 단계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자신이 A씨에게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차량에 불을 지르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A씨가 자신이 잠든 사이 휴대전화에서 C씨와 D씨의 주소와 개인정보를 몰래 빼낸 뒤 독단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이었다.

 

A씨가 자신에게 집착하다가 관계가 끝나자 앙심을 품고 거짓말을 꾸며냈다고도 했다.

 

B씨는 1심 결심공판에서 자신은 “제2의 이은해도, 제2의 고유정도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이 10년 가까이 택배 영업소를 운영하며 직원 20여 명의 생계를 책임져 왔는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살인과 방화를 지시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자신의 처벌이 더 무거워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사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범행을 털어놓았고, 피해자들의 정보와 범행 경위에 관한 진술도 구체적이면서 일관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2025년 11월 28일 B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는 사랑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고, B씨가 다시 함께 살겠다는 약속과 혼인신고를 해주겠다는 말을 믿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약속을 들었다고 해도 아무런 원한이 없는 사람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리치고 타인의 차량에 불을 지른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에서 시작된 A씨의 자백은 미제로 남아 있던 범행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배후로 지목된 B씨를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뒤늦게 진실을 털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C씨의 머리에 남은 상처와 가족까지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생활 수단인 화물차를 잃은 D씨의 피해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다.

 

A씨가 B씨에게 남긴 “우리가 벌인 일은 벌을 받자”는 문장은 결국 범행을 실행한 사람과 그 범행을 지시한 사람 모두에게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