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기피 신청 4년 새 급증…인용은 전국 법원서 단 3건

지법 282건→416건·고법 24건→71건
법조계 “재판 지연·불만 표시 수단으로 악용”

 

전국 법원의 형사재판에서 법관 제척·기피·회피 신청이 최근 수년간 크게 늘었지만 실제 인용된 사례는 4년여 동안 3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기피 제도가 재판을 늦추거나 재판부에 불만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대법원이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방법원 형사사건의 제척·기피·회피 신청은 2022년 282건에서 지난해 416건으로 47.5% 증가했다.

 

연도별로는 2023년 370건, 2024년 405건, 2025년 416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도 1월부터 5월까지 138건이 접수됐다.

 

전국 고등법원 형사 사건의 제척·기피·회피 신청 건수는 2022년 24건이던 신청은 지난해 71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지방법원에서는 2022년 1건만 인용됐고 202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인용 사례가 없었다. 고등법원에서도 2022년 2건이 인용된 이후 올해 5월까지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합쳐 202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인용된 사례는 모두 3건뿐이다.

 

제척·기피·회피는 법관을 특정 사건의 심리에서 배제해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제도다.

 

실제 신청 가운데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제기하는 기피 신청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법원은 제척과 기피, 회피를 구분한 별도 통계를 관리하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증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변론이 종결되는 등 재판이 예상과 다르게 진행될 때 기피 신청을 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피 신청이 접수되면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해 간이기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 재판 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항고와 재항고가 이어지면 본안 재판은 그만큼 늦어진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각각 재판부 기피를 신청했다.

 

두 사람 측은 신청이 기각되자 재항고했고, 대법원의 최종 기각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재판이 약 한 달간 중단됐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의 기피 신청을 심리하는 재판부를 상대로 다시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다.

 

기피 신청으로 재판이 중단된 사이 피고인의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청을 제기한 뒤 변호인들이 잇따라 사임해 후속 절차를 늦추거나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 판결을 받기 위해 신청을 활용하는 사례도 법조계에서 거론된다.

 

판사 출신인 정재민 변호사는 “기피 제도는 재판부의 소송 진행이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용하는 불복 절차가 아니다”라며 “증거 채택이나 변론 종결 등에 대한 불만은 판결 이후 항소심에서 다퉈야 하는데, 이를 기피 신청으로 해결하려 하면 본안 재판만 불필요하게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로서는 기피 사유가 부족해 보이더라도 신청이 접수되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특히 구속사건은 재판이 중단되는 동안 구속기간이 계속 지나가기 때문에 다른 사건보다 재판 지연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0조는 기피 신청이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한 것이 명백한 경우 신청을 받은 법원이나 법관이 결정으로 이를 기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한 경우’로 요건이 제한돼 있어 신청 사유가 부족하더라도 통상적인 심리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이유를 되풀이하거나 불리한 결정이 나온 직후 제기된 신청을 보다 신속히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법관의 편견이나 이해관계가 의심되는 경우 기피 신청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는 중요한 방어 수단이므로 인용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신청 자체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미 판단된 사유를 반복하거나 재판을 늦추려는 목적이 분명한 신청까지 장기간 심리할 필요는 없다”며 “정당한 기피 신청은 충분히 심리하되 반복적이고 이유가 없는 신청은 조기에 판단할 수 있도록 간이기각 기준과 처리 절차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