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23억 횡령·배임…합의도 못 했는데 항소심서 감형, 왜?

횡령 20억·법인카드 사적 사용 3억…891차례 범행
합의 못 했지만 자수·초범·퇴직금 상계 등 참작

 

6년간 회삿돈 20억여원을 빼돌리고 법인카드로 3억여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50대 회사 경리가 피해 회사와 합의하지 못했음에도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보다 1년 감형받았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제14형사부(재판장 허양윤)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과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A씨는 경기 용인시의 한 회사에서 회계와 경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2018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260차례에 걸쳐 회삿돈 20억3000여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회사 법인카드를 백화점 등에서 631차례 사적으로 사용해 3억4000여만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혐의도 받았다.

 

A씨가 약 6년 동안 891차례에 걸쳐 횡령하거나 배임한 전체 피해액은 약 23억7000만원에 달한다.

 

조사 결과 A씨는 빼돌린 돈으로 고액의 월세를 내는 주택에 거주하고 자녀의 사교육비 등을 지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인카드로 백화점에서 한 번에 100만원에서 최대 1500만원 상당의 물품과 상품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1심은 A씨가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반복했고 피해액도 23억원을 넘는 점을 들어 죄책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고 피해 회사가 A씨의 엄벌을 탄원한 사정도 불리한 양형 요소로 반영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의 죄책이 매우 무겁고 비난 가능성도 크다”며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 회사가 입은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큼에도 피해 회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 회사와 합의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수사기관에 자수한 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밝혔다.

 

피해 회사가 A씨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 채권 약 6700만원을 횡령 피해액과 상계해 피해액 일부가 실제로 줄어든 점도 감형 사유가 됐다.

 

재판부는 A씨가 보유한 보증금 반환채권 3000만원과 양육비 채권 4000만원을 피해 변제에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피해 회사와 합의하지 못했더라도 피해액 일부가 실제로 회복됐거나 추가 변제에 활용할 수 있는 재산과 채권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자수 역시 반드시 형을 줄여야 하는 필요적 감경 사유는 아니다. 형법 제52조는 범인이 수사기관에 자수한 경우 법원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전체 피해 규모는 횡령액 20억3000여만원과 법인카드 사적 사용액 3억4000여만원을 합한 약 23억7000만원이다.

 

다만 특정경제범죄법상 가중처벌 여부를 판단할 때 경합범 관계에 있는 횡령과 배임의 이득액을 단순히 합산하지는 않는다.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법상 이득액을 하나의 범죄 또는 포괄일죄로 인정되는 범행을 통해 취득한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A씨에게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된 것은 회사 계좌에서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횡령액만으로도 5억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법인카드로 사용한 3억4000여만원에는 별도로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됐다.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는 횡령이나 배임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심과 비교해 양형 조건에 별다른 변화가 없고 1심의 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항소심이 1심의 양형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항소심에도 피고인의 피해 회복 정도와 범행 후 태도, 변제 가능성 등 양형 조건을 다시 살펴 독자적으로 형을 정할 수 있는 재량이 인정된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피해자와의 합의는 중요한 양형 요소지만 감형 여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며 “항소심은 피해액이 실제로 일부 회복됐는지, 추가 변제에 활용할 수 있는 재산이나 채권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는지, 피고인이 범행 후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등을 종합해 형을 다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금 상계는 단순히 변제 의사를 밝힌 것과 달리 피해액 일부가 현실적으로 줄어든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며 “보증금 반환채권 등 추가 회수 가능성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면 피해 회사와 합의하지 못했더라도 양형에 반영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