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됐을지는 몰라도 배상”…반성문 누락·공탁 지연한 변호사 책임

법원 “양형자료 토대로 판단받을 기회가 보호 대상”
선고 이틀 전 공탁했지만 통지서는 판결 후 도착
변호사 2명에 공동 위자료 300만원 지급 명령

 

형사재판에서 실제 감형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변호사의 업무 소홀로 반성문과 형사공탁 등 유리한 양형자료가 재판부에 전달되지 않았다면 의뢰인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1-2부는 형사사건 의뢰인 A씨가 담당 변호사 B씨와 C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을 일부 취소하고, 두 변호사가 공동으로 A씨에게 위자료 3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 변론이 종결된 뒤인 2024년 3월 B씨와 C씨를 선임했다.

 

A씨 측은 착수금 1500만원을 지급하고, 변호사가 1심 선고 때까지 사건을 맡고, 검사가 항소할 경우 추가 비용 없이 항소심 선고 때까지 변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피해자와의 합의나 형사공탁이 필요한 경우 관련 절차도 변호인들이 대행하기로 했다.

 

A씨는 같은 해 5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검사와 A씨가 모두 항소하면서 두 변호사는 항소심 변론도 맡았다.

 

B씨는 A씨 부친에게 피해자와 합의를 추진하고, 합의가 성립하지 않을 경우 1000만원을 형사공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씨가 구치소에서 작성한 사과문과 편지, 반성문에 부친의 탄원서를 더해 변호인 의견서와 함께 제출하겠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피해자와의 합의가 성립하지 않았는데도 공탁 절차는 즉시 진행되지 않았다.

 

B씨는 항소심 선고기일을 엿새 앞둔 2024년 9월 26일에도 A씨 부친에게 선고기일이 변경되면 새로 정해진 기일에 맞춰 공탁하겠다고 안내했다.

 

두 변호사가 실제 공탁 절차에 착수한 것은 법원으로부터 선고기일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은 같은 달 30일이었다. A씨 부친이 마련한 1000만원은 이날 오후 4시께 전자공탁 계좌에 납부됐다.

 

항소심 선고는 예정대로 이틀 뒤인 10월 2일 오전 진행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판결문에는 A씨가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고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불리한 양형 사유로 기재됐다.

 

A씨 측이 납부한 공탁금은 항소심 판결에 반영되지 못했다. 전자공탁에 따른 형사공탁 사실 통지서가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담당 재판부에 접수됐기 때문이다.

 

변호인들이 제출하기로 했던 A씨의 반성문과 부친의 탄원서도 항소심 재판부에 전달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같은 해 11월 형이 무겁다는 양형부당 주장은 적법한 상고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A씨는 이후 두 변호사가 공탁 절차를 적절한 시기에 진행하지 않고 반성문과 탄원서도 제출하지 않아 항소심에서 충실한 양형 판단을 받을 기회를 잃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두 변호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가 성립하지 않을 경우 형사공탁을 하기로 사전에 협의한 이상, 변호인들에게는 공탁에 필요한 사항을 의뢰인 측에 설명하고 판결에 반영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에 절차를 마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원고 측에 형사공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절차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적절한 시기에 공탁을 완료함으로써, 원고가 형사공탁 사실이 반영된 양형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들이 원고의 반성문과 부친의 탄원서 등을 변호인 의견서와 함께 제출하겠다고 설명했고 실제로 해당 자료를 전달받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형사재판부에 제출해 양형자료로 심사받도록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두 변호사가 공탁 절차를 늦게 진행하고, 전달받은 반성문과 탄원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형사사건 위임계약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다만 변호사들의 업무 소홀과 A씨에게 선고된 형량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공탁금과 반성문 등이 적절한 시기에 제출됐더라도 A씨가 실제로 감형됐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원고가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을 받을 수 있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원고는 형사공탁과 반성문 등 자신에게 유리한 양형자료를 토대로 양형에 관한 실질적인 판단을 받을 기회를 상실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가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들은 이를 금전으로 위자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들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양형자료 제출을 누락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형사공탁과 반성문 등의 제출을 제외한 나머지 항소심 변론 업무는 비교적 성실하게 수행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