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대마 넘어 신종마약 확산…유통 방식도 ‘액상화’

규제 피해 성분 바꾸는 대체물질화도 반복
10대 압수품서 합성대마 364건·필로폰 284건
성분·함량 알기 어려워 급성중독 위험도 커져

 

국내 마약류 시장이 메트암페타민과 대마 중심에서 합성대마·케타민·펜사이클리딘계 등 신종 물질로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액상이나 전자담배 형태로 위장한 합성대마가 10대까지 확산하고, 한 시료에서 여러 약물이 함께 검출되거나 규제된 약물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대체 물질이 등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5’에 따르면 지난해 국과수에 의뢰된 소변·모발·압수품 마약류 감정 건수는 14만775건으로, 2023년 12만7365건보다 약 10% 증가했다.

 

소변과 모발 감정은 각각 2만6350건과 3만5993건으로 전년보다 감소했으나, 압수품 감정은 5만4046건에서 7만8432건으로 45.1% 늘었다. 투약 여부를 확인하는 생체시료 감정이 감소한 것과 달리 수사기관이 확보한 압수물에 대한 감정 의뢰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종류별로는 합성대마와 케타민 등 신종 물질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 가운데 주요 신종마약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1.7%에서 지난해 31.5%로 높아졌다.

 

전국 압수품 감정에서 케타민은 전년보다 48% 증가한 3292건, 펜사이클리딘류는 24% 늘어난 406건이 검출됐다. 에토미데이트와 메데토미딘 등을 포함한 기타 향정신성의약품류도 2024년 251건에서 지난해 637건으로 154% 증가했다.

 

마약류 유통 형태도 분말이나 식물 조각에서 액상과 전자담배 형태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액체 형태 압수품은 2022년 999건에서 지난해 3288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전자담배 형태로 압수된 사례도 1465건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검출된 합성대마류 3949건 가운데 액체 형태는 2314건, 전자담배 형태는 703건으로 두 유형이 전체의 76%를 넘었다.

 

액상형 합성대마는 일반 전자담배와 외형상 구별하기 어려운 데다 휴대와 투약이 쉽고 냄새가 적어 주변에서 사용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10대 압수품에서도 합성대마 검출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연령이 확인된 10대 압수품 가운데 합성대마류는 364건으로 메트암페타민 284건보다 많았다. 모든 연령대 가운데 합성대마 검출 건수가 메트암페타민을 넘어선 것은 10대가 유일했다.

 

백서에는 지난해 4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중학생들이 전자담배를 흡입한 뒤 난동을 부린 사건도 담겼다. 당시 학생들이 사용한 전자담배에서는 합성대마 성분 4종이 검출됐다.

 

두 종류 이상의 마약류가 한 시료에서 함께 검출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지난해 소변 감정에서는 메트암페타민과 대마가 함께 검출된 사례가 107건으로 가장 많았고, MDMA와 케타민 46건, 대마와 델타8-THC 29건, 메트암페타민과 케타민 21건이 뒤를 이었다.

 

모발 감정에서는 MDMA와 케타민이 함께 검출된 사례가 247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만 합성대마류에서 여러 성분이 검출된 사례는 투약자가 직접 복수의 약물을 사용한 결과가 아니라 제조·유통 단계에서 이미 성분이 혼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국과수는 설명했다.

 

합성대마는 제조 과정에서 성분과 함량이 일정하게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투약자가 실제로 어떤 물질을 어느 정도 사용했는지 알기 어렵다. 예상하지 못한 성분이 함께 들어 있거나 고농도 물질이 섞여 있을 경우 급성중독과 이상행동 위험도 커질 수 있다.

 

규제가 강화된 약물 대신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물질을 찾는 대체물질화도 이어졌다.

 

프로포폴 관리가 강화된 뒤 에토미데이트가 대체 약물로 확산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동물용 진정·마취제로 사용되는 메데토미딘까지 압수품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압수품 감정에서 에토미데이트는 211건, 메데토미딘은 184건 검출됐다.

 

국과수는 남용 대상이 프로포폴에서 에토미데이트로, 다시 메데토미딘으로 바뀌고 있지만 마취제류를 찾는 수요층은 사라지지 않아 규제 물질만 교체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약류가 검출된 변사 사례도 늘었다. 지난해 변사 사건에서 마약류나 환각물질이 단독으로 검출된 사례는 40건으로, 2022년 28건, 2023년 27건, 2024년 33건보다 많았다.

 

최근 4년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로, 메트암페타민이 단독 검출된 사례가 33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신종마약류는 성분과 함량을 알기 어려운 액상이나 혼합물 형태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고 독성과 치사량에 관한 연구도 충분하지 않아 급성중독 위험을 예측하기 어렵다.

 

새로운 물질이 등장한 뒤 감정에 필요한 표준물질을 확보하고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감정과 수사 체계가 유통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한계도 제기된다.

 

신종 물질의 등장과 유통 방식 변화에 대응하려면 단속뿐 아니라 예방과 치료, 사회복귀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병선 소망교도소 전문경력관 겸 오산대 겸임교수는 “신종마약류는 새로운 성분이 등장하고 유통 형태가 바뀌는 속도가 규제와 단속보다 빠르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국과수,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와 조기경보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부터 중독자의 치료·재활까지 이어지는 통합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