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0시께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공항철도에서 하차해 제1여객터미널보다 비교적 한산한 터미널 안에서 고령층이 줄지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여행객들 사이에 섞여 있었지만 이들의 손에는 캐리어가 없이 핸드백과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고 그 안에는 박카스 서너 병이 담겨 있었다.
이들을 따라가자 제2합동청사 문 앞쪽에 대청마루처럼 넓은 휴게공간이 나타났다. 한 명에서 세 명씩 무리를 이룬 어르신 9명가량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쪽 벤치에서는 세 명의 어르신이 나란히 앉아 신문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0여 분 뒤 다시 찾은 휴게공간의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처음보다 6개 무리가 더 늘어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마다 한 명에서 세 명씩 모여 준비해 온 음식을 먹거나 누워 휴식을 취했다.
이들이 공항을 찾은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있던 서울 목동에서 온 A씨는 방문 목적을 묻자 “피서 왔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는데 보통 두세 시간 있다가 간다”며 “친구들과 떠들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 더위를 피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왔다는 B씨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공항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고 했다. 그는 “오전 9시 정도에 와서 오후 5~6시쯤까지 있다가 간다”며 “오후 1시 정도까지 사람들이 계속 오고, 많이 올 때는 100명 정도 모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했다. 그는 “여기 오면 벤치에 서너 명씩 모여 장기를 두기도 하고 신문을 보거나 서로 이야기를 한다”며 “돗자리를 펴고 누워 쉬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제1여객터미널보다 제2여객터미널을 주로 찾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제2여객터미널은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하고 일반 이용객들과 덜 부딪힐 수 있어서 주로 이쪽으로 온다”며 “복지관이나 다른 쉼터는 이미 사람이 많이 몰려 있어 더위를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절기상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고 있다. 최근 10년간 폭염 시작일은 과거보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10~30일가량 빨라졌고 종료 시점은 오히려 약 10일 늦어져 8월 중·하순까지 더위가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길어진 더위에 집 밖의 시원한 공간을 찾아 공항까지 오는 고령층에게 교통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접근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만 65세 이상은 수도권 전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공항철도에 따르면 올해 7월 65세 이상 이용객은 165만 4112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154만 6310명보다 10만 7802명 증가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증가 폭은 20%를 넘어섰다.
물론 이들 모두가 더위를 피해 공항을 찾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날 제2여객터미널에서는 여행객들과 달리 캐리어 없이 공항을 찾아 휴게공간에 머무르는 고령층을 볼 수 있었다.
도심에서 장시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냉방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은 점도 이들이 공항으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서울시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서울 시내 무더위쉼터 4026곳 가운데 2815곳(71.3%)은 경로당 등 회원이용시설로 분류돼 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된 시설은 202곳에 그쳤다.
일부 시설은 이용 대상이나 운영시간에 제한이 있다. 반면 인천공항은 냉방이 계속되고 별도의 회원 자격 없이 출입할 수 있다. 곳곳에 벤치와 휴게공간이 마련돼 있고 화장실과 식당, 편의점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여행객뿐 아니라 더위를 피해 장시간 공항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현장에서 이를 관리하는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늘고 있었다.
제2여객터미널에서 근무하는 한 환경미화원은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면 일이 많아지고 핸드타월 같은 소모품의 소비량도 늘어난다”며 “핸드타월을 가져가시거나 따로 쌓아두는 경우도 있는데 채워 놓으면 다 사용하거나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주에는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며 “보통 오전 8시 30분에서 9시쯤 오셔서 오후 4시 30분에서 5시 정도가 되면 짐을 챙겨 움직이신다”고 했다.
여행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어르신들은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이 폭염 속에서는 여행과 무관하게 하루의 상당 시간을 보내는 피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입추가 지났지만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이 같은 ‘공항 피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B씨는 “7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공항에 와서 더위를 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