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고리를 끊어라…천안교도소 남근석 사건

한 달에 한 번꼴로 이어진 인명사고
절박한 직원들이 붙잡았던 마지막 희망

 

교도소 안에서는 외부에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교정공무원들은 작은 징후 하나가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긴장 속에서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이어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인명사고가 거듭될 때면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법에라도 기대고 싶은 것이 교도관들의 심정이다.

 

2000년대 초 천안소년교도소에서는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잇따랐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사고 소식이 전해질 만큼 어수선한 시기였다.

 

아침 점검시간에 번호를 잘못 말했다는 이유로 다른 수용자에게 가슴을 걷어차인 수용자가 숨지는가 하면, 가족 만남의 날 행사에서 어머니가 챙겨 온 점심을 먹은 수용자가 그날 오후 갑자기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수용자와 경비교도대원의 자살 사고에 이어 정화조 인근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경비교도대원이 실족해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소장과 보안과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사고를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좀처럼 사고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액운이 끼어도 단단히 끼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불교 종교행사를 위해 교도소를 찾은 한 스님이 교회당 앞 연못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뜩이나 옹녀 터라 음기가 센 곳에 연못까지 파서 물을 받아 놓았으니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지.”

 

한 직원이 사고를 막을 방법을 묻자 스님은 연못의 물을 빼고 수용구역 출입문 부근에 남근석 두 개를 묻으라고 했다. 남근석은 남성의 성기를 본떠 만든 돌로, 예부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거나 액운을 막는 상징물로 여겨졌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보안과장은 교회당 앞 연못의 물을 비우고, 수용구역 출입문과 가까운 직원식당 앞 풀밭에 남근석 두 개를 묻게 했다. 두 돌은 약 1m 간격으로 세워졌다. 하나는 윗부분이 파인애플만 했고 다른 하나는 야구공 정도의 크기였다.

 

사고를 막으려는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4감시대 위에서 경비교도대원들이 기르던 오리를 치운 뒤 교도소 뒤편 산에 올라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도 지냈다.

 

보안과장과 보안교감, 당직교감을 비롯한 여러 직원은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절을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직원들은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을 만큼 절박했다.

 

 

갑자기 등장한 남근석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소년수 종교행사를 위해 여성 방문객도 자주 지나는 곳에 부적절한 물건을 세웠다며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들은 전통적인 상징물이나 조형물로 볼 수도 있다고 맞섰다. 대부분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피식 웃으며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한 보안과장이 직원식당 앞을 살펴보니 남근석 두 개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보안과장이 누가 치웠는지 찾아내라고 지시했고, 직원들이 수소문한 끝에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총무과장이 새벽에 경비교도대원을 데려와 남근석을 파낸 뒤 손수레에 싣고 갔다는 목격담을 확보했다.

 

보안과장은 총무과장에게 남근석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총무과장은 미신에 불과한 데다 종교행사를 위해 방문하는 여성들에게도 민망하다며 거부했다. 남근석을 어디에 가져다 놓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갈등은 소장실 아침 회의까지 이어졌다. 보안과장과 총무과장이 심한 말다툼을 벌인 끝에 소장은 사고를 막기 위해 취한 조치인 만큼 남근석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도록 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돌은 다시 직원식당 앞 풀밭에 세워졌다.

 

한때 물을 비웠던 교회당 앞 연못은 후임 소장과 보안과장이 부임한 뒤 복원됐다. 연못에 다시 물을 채우고 잉어를 넣어 관리했지만 남근석만큼은 직원식당 앞자리를 계속 지켰다.

 

이후에도 사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인명사고가 짧은 기간에 잇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2015년 교감으로 승진해 대전으로 전출됐다가 3년 뒤 천안교도소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교도소 곳곳을 둘러보다 직원식당 앞에 있어야 할 남근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전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행방을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인지 남근석이 그 자리에 놓이게 된 사연을 아는 직원도 드물었다.

 

‘누가 치웠을까.’

 

내가 대전에 근무하는 동안 남근석 사건 당시 천안소년교도소 총무과장이었던 분이 교정본부장이 됐다. 교도소를 순시하다 남근석을 발견하고 치우라고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분처럼 신앙심이 깊은 누군가가 없앤 것은 아닐까.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어 여러 생각만 머릿속을 스쳐 갔다.

 

최근 천안교도소에서 큰 사고가 잇따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오래전 직원식당 앞을 지키던 두 개의 남근석과 이를 둘러싼 소동이 떠올랐다.

 

물론 남근석이 사고를 막아주는 특별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직원들의 행동에는 어떻게든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 직원들은 “대형 사고는 한번 시작되면 세 번까지 이어지지만, 그 고리를 끊어내면 몇 년 동안 잠잠해진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사고가 멈출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게 해주는 말이었다.

 

지금도 현장에서 사고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을 후배들이 힘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가 힘을 모아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하루빨리 사고의 고리를 끊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전 천안소년교도소의 남근석 사건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