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금속가공 뒤 폐암…20년 흡연력에도 ‘산재’ 인정

밀폐공간서 보호구 없이 장기 근무
유해물질 누적노출 폐암 영향 인정

 

장기간 금속가공 작업을 하며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면 약 20년간 담배를 피운 근로자라도 폐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진현섭)는 숨진 근로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 6월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금속가공업체에서 약 13년간 밀링머신과 그라인더 등을 이용해 철과 알루미늄 등을 절단·연마하거나 기계부품을 가공하는 업무를 했다.

 

그러다 2021년 9월 원발성 폐암인 선암 진단을 받고 치료 진행 중 숨졌다. B씨는 남편 A씨의 폐암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공단은 금속분진 노출 수준이 낮고 니켈과 크롬도 발암성 형태가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업무와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차 청구에도 같은 처분이 내려지자 B씨는 지난해 9월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해 금속가공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됐더라도 폐암과의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은 판례도 있다.

 

2015년 부산지법은 과거 약 33년간 금형가공 업무를 한 근로자가 폐암으로 숨진 사건에서 오일미스트에 장기간 노출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업무상 재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당시 작업환경 측정 결과 기준 이상의 금속가공유에 노출됐다고 보기 어려웠고, 유해물질의 종류와 노출량을 확인할 구체적인 자료도 부족했다. 특히 법원 감정에서는 작업환경보다 20년 이상의 흡연력이 폐암 발병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소견이 제시됐다.

 

반면 재판부는 A씨의 구체적인 작업환경과 유해물질의 누적 노출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재판부는 “약 13년간 환기가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등 보호구 없이 일하면서 수용성 금속가공유 미스트와 금속 흄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이러한 작업환경이 흡연 등 다른 요인과 결합해 폐암 발병을 급격히 촉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약 20년간 하루 평균 담배 15개비를 피웠지만 이 점이 업무상 재해를 부정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원 감정의도 “해당 작업환경에서 유해물질 노출 농도가 일반적인 작업장보다 수십 배 이상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노출 기간 역시 암 발생의 임계치를 넘어 암세포가 발현되기에 충분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했고, 양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지난달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