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수용거실에서 여러 수용자가 한 사람의 명의로 과자나 생활용품을 구매해 나눠 쓰는 이른바 ‘공동구매’가 수용자 간 위계와 갈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법원의 지적이 나왔다.
보관금이 부족한 수용자는 설거지나 청소 등으로 구매 비용을 대신하고, 비용을 부담한 수용자는 식기 당번에서 빠지는 방식으로 거실 내 역할과 지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용자의 자비구매는 개인별 신청을 원칙으로 한다. 수용자는 교정시설장의 허가를 받아 자신의 비용으로 음식물과 의류, 침구 등 수용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다.
구매신청서에는 본인이 품목과 수량을 적고 서명하거나 지문을 날인해야 하며, 구매한 물품도 신청한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일부 수용거실에서는 여러 명이 필요한 물품과 부담할 금액을 정한 뒤 특정 수용자의 명의로 한꺼번에 주문해 나눠 쓰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공동구매 관행은 최근 대구지법에서 다뤄진 징벌처분 취소소송에서도 확인됐다.
대구지법 제1행정부(재판장 정석원)는 김천소년교도소 수용자 A씨가 교도소장을 상대로 낸 징벌처분 취소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사건은 지난해 6월 김천소년교도소의 한 수용거실에서 이뤄진 공동구매에서 시작됐다. 수용자들은 필요한 물품과 부담할 금액을 공동구매 노트에 적은 뒤 특정 수용자 명의로 한꺼번에 주문해 왔다. 문제가 된 구매신청서 3장도 C씨가 내용을 작성하고 B씨가 서명하는 방식으로 모두 A씨 명의로 제출됐다.
법원은 B씨가 구매 내용을 미리 알렸고 A씨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A씨는 교도관에게 “B씨가 미리 서명해 둔 구매신청서를 임의로 사용하고 물품 구매를 강요했다”고 신고했다.
김천소년교도소 징벌위원회는 A씨가 B씨를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거짓 사실을 신고했다고 판단해 금치 16일을 의결했다.
B씨가 A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경찰에서 불송치됐지만 재판부는 형사상 무고죄와 교정행정상 징벌은 판단 기준이 다르다고 봤다.
재판부는 “형법상 무고죄의 법리가 교정행정상 징벌 절차에 그대로 적용되거나 유추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며 “형집행법의 해석과 적용에 따라 처분사유의 존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동구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용자 간 위계와 갈취 문제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보관금이 부족한 수용자는 설거지나 노동으로 구매 비용을 대신하고 있다”며 “보관금이 충분한 수용자는 식기 당번과 같은 역할을 맡지 않으면서 보관금 규모에 따라 거실 내 위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정당국이 공동구매를 제한하는 것도 수용자 사이에 거래관계나 위계가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형집행법 시행규칙은 교정시설장의 허가 없이 다른 수용자에게 금품을 주거나 제3자를 통해 전달하는 행위, 물품을 서로 교환하거나 주고받는 행위를 규율 위반으로 정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특정 수용자의 명의로 물품을 구매한 뒤 나눠 갖는 행위도 허가받지 않은 금품·물품 수수에 해당할 수 있다.
특정 수용자가 거실 내 지위를 이용해 다른 수용자에게 물품 구매를 요구했다면 별도의 징벌사유도 성립할 수 있다.
광주지법은 2017년 한 수용자가 다른 수용자에게 빵을 사거나 신문을 구독하도록 요구한 사건에서 강요죄에 해당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부당한 금품 요구’라는 징벌사유는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수용자들이 교정시설의 지시와 별도로 공동구매 방식이나 거실 내 규칙을 만들어 운영하는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대표자 명의로 물품을 구매하는 ‘공동구매’와 개인이 적법하게 구매한 소모품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공동사용’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접수된 진정사건에서 샴푸와 비누, 과자 등 일반적인 소모품을 함께 사용하는 행위까지 일률적으로 규율 위반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수용자들이 소모품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행위에는 상호부조의 측면도 있어 이를 모두 징벌하면 자의적인 법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동구매는 대부분 수용거실 안에서 당사자들끼리 이뤄져 관련 수용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교정당국이 파악하기 어렵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인별 구매 원칙과 수용자 간 금품·물품 수수 제한은 금전 거래관계와 위계 형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며 “공동구매나 구매 강요 사실을 신고하도록 지속해서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신고가 접수되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강요나 갈취 정황이 드러날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