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이 출판 과정에 활용되면서 책 제작과 판매에 머물렀던 출판산업도 ‘지식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26일 출판계에 따르면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은 전날 대한출판문화협회 특별강연에서 ‘AI 시대, 대체불가 대한민국 AI 전략과 출판산업의 변화 방향’을 주제로 출판산업의 역할 변화를 제안했다.
하 전 수석은 출판사가 보유한 콘텐츠를 AI 기업에 제공하고 국내외에서 발생한 수익을 배분받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설을 웹툰·게임·영화·드라마 등으로 확장하고, 관련 지식재산권(IP)을 공동으로 소유·관리하는 방안도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제시했다.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AI 기술의 발달로 아이디어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된 만큼 기존 출판 방식이 AI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 전 수석은 와일리와 앤트로픽의 협력을 AI 시대 출판산업의 변화 사례로 소개했다.
글로벌 학술출판사 와일리는 지난해 AI 기업 앤트로픽과 전략적 협력 계획을 발표하고 자사의 연구 콘텐츠를 AI 플랫폼에서 활용하는 시범사업에 나섰다.
앤트로픽이 개발한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을 활용해 연구자와 학생들이 AI 서비스 ‘클로드’에서 와일리의 과학저널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양사는 AI가 학술 콘텐츠를 제공할 때 저자와 출처, 인용 정보 등 적절한 맥락을 함께 표시하기 위한 기준 마련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와일리는 이후 학술 콘텐츠와 AI 서비스를 연결하는 ‘와일리 AI 게이트웨이’를 구축했다.
여러 출판사의 학술 콘텐츠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클로드와 미스트랄AI, 퍼플렉시티 등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콘텐츠를 제공한 출판사는 라이선스와 접근 권한을 유지하면서 AI 기업의 이용에 따른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다. 출판사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보유 콘텐츠를 AI 시장에서 수익화하는 구조다.
국내에서도 AI를 도서 제작에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출판사 루미너리북스는 자체 AI 기술을 활용해 지난해 경제·인문·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9000권의 도서를 출간했다. 루미너리북스는 “초안 기획과 구성 설계, 내용 검토, 교정 등 출판 과정에서 사람의 작업과 AI 기술을 함께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단기간에 다수의 도서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품질 관리 문제도 불거졌다. 루미너리북스가 AI 활용 도서를 대량으로 출간하자 일부 도서의 오류와 완성도를 둘러싸고 이른바 ‘딸깍 출판’ 논란이 제기됐다.
하 전 수석은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저품질 도서가 범람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출판사와 창작자 단체가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I와 출판 콘텐츠의 결합이 확대되면서 기존 저작물을 학습과 서비스에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와일리와 협력한 앤트로픽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확보한 도서를 AI 모델 ‘클로드’ 학습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2024년부터 작가들과 대규모 저작권 소송을 벌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적법하게 확보한 도서를 AI 모델 학습에 이용한 행위는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불법 복제된 도서 사본을 별도의 디지털 라이브러리에 보관한 행위는 공정이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법원은 2026년 7월 앤트로픽과 저작권자들이 마련한 15억달러 규모의 합의안을 최종 승인했다.
김태헌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출판계가 지난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유통 플랫폼의 변화나 전자책, 오디오북과 같은 새로운 흐름에 다소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번 AI 변화만큼은 늦지 않게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