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억 권리금 무산시킨 월세 3배…대법 ‘고액’ 기준 구체화

신규 임차인 임대료 부담에 포기
“구체적 사정에 따른 판단 필요”

 

상가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기존보다 크게 오른 임대료를 요구해 권리금 계약이 무산된 사건에서 대법원이 ‘현저히 고액’인 차임과 보증금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임대인 A씨가 임차인 B씨를 상대로 낸 건물인도 소송과 B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반소에서 손해배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는 A씨 소유 상가에서 보증금 1억원, 월 차임 600만원을 내고 약국을 운영했고 임대차계약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묵시적으로 갱신됐다.

 

A씨는 2023년 4월 B씨에게 월 차임을 24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같은 해 9월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B씨는 새로 약국을 운영하려는 C씨와 권리금 22억원을 지급받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A씨가 C씨와 임대차계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증금 5억원과 월 차임 2000만원을 요구했고, C씨가 임대료 부담을 이유로 계약을 포기하면서 권리금 계약도 해제됐다.

 

A씨는 임대차기간이 끝난 뒤 B씨를 상대로 상가를 인도하라는 소송을 냈고 B씨는 A씨가 신규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임대조건을 제시해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는 2015년 도입됐다. 같은 해 5월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는 권리금의 정의와 함께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를 제한하는 제10조의4가 신설됐다.

 

그동안 법원은 실제 임대조건과 계약 협상 과정 등 개별 사건의 사정을 종합해 ‘현저히 고액’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 왔다.

 

실제 2022년 울산지법은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한 사건에서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 방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존 임차인은 보증금 1억원에 월 차임 없이 점포를 사용했지만, 임대인은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 1000만원과 월 차임 150만원을 요구했다. 신규 임차인은 월 차임을 부담하는 조건에 동의하지 않았다.

 

기존 임차인 측은 새 임대조건이 종전보다 약 3.3배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기존 계약이 체결된 경위와 같은 건물의 임대료, 임대인이 협상 과정에서 월 차임을 낮춰 제시한 사정 등을 종합해 ‘현저히 고액’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1·2심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약국이 병원 인근의 이른바 ‘문전약국’이고 2023년 월평균 조제료 수입이 약 1억원에 달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제시한 임대조건을 ‘현저히 고액’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약국의 수입만으로 임대조건의 적정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현저히 고액’인지 판단할 때 법에 규정된 조세와 공과금, 주변 상가의 차임과 보증금뿐 아니라 기존 임대조건과 신규 임차인에게 요구한 조건의 차이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상가건물의 시세 및 적정 차임, 거래관행과 경제상황 등도 고려해 구체적 사정에 따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적정 차임과 보증금을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감정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했다.

 

기존 임대조건과 비교해 신규 임차인에게 제시한 조건이 ‘현저히 고액’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면 적정 차임과 보증금이 감정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의 손해배상 청구를 곧바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에서 A씨가 신규 임차인에게 요구한 월 차임은 2000만원으로 기존 월 차임 600만원의 약 3.3배였다. 보증금을 월 차임으로 환산해 합산한 환산보증금도 기존 계약의 약 3.57배에 달했다.

 

대법원은 기존 임대조건과 신규 임차인에게 제시한 조건의 차이, 상가의 시세와 적정 임대료 등을 충분히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씨가 ‘현저히 고액’인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해 B씨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는지를 원심법원에서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