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구치소에서 근무하는 21년 차 교도관 김규범 작가는 네 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자 구독자 3만 5000여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사월이네 북리뷰’의 운영자다. 학교와 공공기관, 기업에서 인문학 강연도 하고 있다.
‘직장을 벗겨내면 나에게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독서는 글쓰기로 이어졌다. 20년 넘게 교정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경험은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 작가에게 고전과 필사, 교정 현장에서 바라본 인간, 본업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함께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김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Q. 21년 차 교도관이면서 작가와 강연자, 콘텐츠 창작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인천구치소에서 근무하는 21년 차 현직 교도관 김규범입니다. 작가와 강연자,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고, 구독자 3만 5000여 명 규모의 유튜브 채널 ‘사월이네 북리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전의 고전’을 시작으로 ‘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 ‘감정을 살아내는 중입니다’에 이어 올해 네 번째 책 ‘사유의 사계절’을 출간했습니다.
첫 책은 예스24 인문 분야 베스트 2위, 두 번째 책은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 7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150회 넘게 대중 강연도 진행했습니다.
최근에는 법무연수원에서 강의를 하고 최근 3년 동안은 직무 관련 내용을 넘어 인문학을 주제로도 강연하고 있습니다.
활동 분야는 다양하지만 중심에는 늘 책과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만나며 생긴 질문을 다시 책에서 고민합니다. 그렇게 얻은 생각을 제 언어로 정리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글 쓰는 교도관’ 뭔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처음 책을 펴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교도관이 되기 전에도 약 6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20대를 거의 직장에 몰두하며 보낸 셈입니다. 한 가지 일에 빠지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인데, 어느 순간 직장이 곧 제가 돼 있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나에게서 직장을 벗겨내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었는데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여러 고전을 접하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 선택이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첫 책에서는 당시 가장 궁금했던 ‘직장’이라는 존재를 들여다봤습니다. 이후에는 시야를 직장 밖으로 넓혀 인간관계에서는 왜 갈등이 생기는지,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다음 책들을 썼습니다.
Q. 20년 넘게 교정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과 삶을 마주해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책을 쓰는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A. 많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규율과 원칙을 앞세우는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다양한 수용자를 만나면서 한 사람을 특정한 행동이나 한 장면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합니다. 다만 잘못된 행동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수용자는 형기를 마친 뒤 다시 사회로 돌아갑니다.
교정은 법이 정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동시에 사회 복귀를 준비하도록 돕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잘못된 행동에는 엄격하게 대응하되, 그 행동만으로 한 사람을 단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글을 쓰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의 행동을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으로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 어떤 욕망과 갈등, 선택의 과정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제 글에서도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답을 내리기보다 독자가 인간과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Q. 네 번째 책 ‘사유의 사계절’에는 여러 고전의 문장이 담겼습니다. 수많은 문장 가운데 50편을 고를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봤나요?
A. ‘사유의 사계절’은 사람의 삶을 사계절에 비유한 책입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지나 다시 봄으로 돌아가는 구성을 통해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문장을 고를 때는 ‘작품 전체를 알지 못해도 이 문장 하나로 생각을 시작할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봤습니다.
유명한 문장보다는 원전을 읽지 않은 독자도 스스로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대목을 골랐습니다. 독자에게 답을 주기보다 생각을 시작할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Q. 요즘은 짧고 빠른 콘텐츠가 익숙한 시대인데, 그럼에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고전이 가진 중요한 힘 가운데 하나는 ‘질문을 만들게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서는 비교적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반면 고전은 반드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책을 덮은 뒤에도 ‘이게 무슨 의미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과 선택을 고전을 통해 바라본 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저는 그런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지금 시대에 더 중요해졌다고 봅니다.
Q. ‘사유의 사계절’은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필사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굳이 손으로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필사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를 늦추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빠르게 살아갑니다. 시선도 끊임없이 밖을 향합니다. 정작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충분히 갖지 못합니다.
책은 빠르게 읽을 수도 있고 필요한 부분을 건너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으로 문장을 옮겨 쓰는 과정은 건너뛸 수 없습니다. 문장 하나를 쓰는 동안에는 반드시 멈춰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필사를 ‘생각이 너무 빨라졌을 때 그 속도를 손끝으로 줄이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문장을 직접 쓰고 그 문장이 던지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겁니다. 필사하는 동안만이라도 느려진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싶나요. 본업과 작가님이 원하는 일을 함께 해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궁금합니다.
A.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글과 강연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배울 것은 다시 배우는 과정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누구에게나 ‘느림’이 필요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잠시 멈추는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업이 있다고 해서 다른 가능성을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 역시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책을 쓰고 유튜브를 운영하고 강연해왔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기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세상에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얼마나 노력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았느냐에 따라 얻는 것도 달라집니다.
‘사유의 사계절’에서 말하고 싶은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삶의 기준은 밖에서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신의 선택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얻은 생각을 글과 강연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