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할 때 한 성범죄 피의자를 면담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피의자의 표정과 목소리가 갑자기 달라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나도 긴장할 만큼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잠시 뒤 피의자는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수사기록에서 확인했던 충동적 반응이 실제 면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프로파일러가 되기 전에는 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로 일했다. 사람의 행동 이면에 자리한 감정과 관계를 살펴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본 뒤 심리학을 범죄 수사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찰에 들어가 프로파일러로 일하게 됐다.
프로파일러의 시선은 범죄가 일어난 원인과 범행의 특성을 향한다. 나 역시 현장과 수사자료를 분석하고 피의자를 면담하며 범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범인을 검거한 뒤에도 문제는 남았다.
범행을 일으킨 충동과 왜곡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형을 마친 뒤 다시 범죄로 이어질 수 있었다. 범죄 원인을 밝혀내는 것만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돕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을 떠나 교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폭력사범을 상담하면서 사람마다 위험 요인과 치료 필요성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당시에는 이를 구분해 치료하는 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교정본부에서 성폭력사범의 위험성과 치료 필요 수준을 평가해 기본·집중·심화 과정으로 나누는 체계를 만들었다. 현장 직원들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국 5개 교정심리치료센터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운영 기반도 갖췄다.
프로그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과 안정적인 조직이 필요했다.
성폭력사범 수와 프로그램 운영 횟수 등을 토대로 필요한 인원을 산출하고 조직 신설안을 마련했다. 이러한 작업은 2015년 조직 개편안 제출과 2016년 태스크포스(TF) 운영을 거쳐 교정본부와 일선 기관의 심리치료 조직 신설로 이어졌다.
교정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수사 단계에서는 피의자, 기소된 뒤에는 피고인, 형이 확정되면 수형자로 불렸다.
명칭과 법적 지위는 달라졌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경찰에서는 범죄 행동과 원인을 봤다면 교정에서는 그 사람이 지닌 문제와 변화 가능성을 보게 됐다.
그러나 가해자의 변화만으로 사건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사건에는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무너진 일상, 범죄가 남긴 결과와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도 있었다. 이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법원으로 옮겨 양형조사 업무를 맡았다.
법원에서는 피고인의 성장 과정과 심리적 특성뿐 아니라 범행 경위와 피해 정도, 피해자의 입장, 재범 가능성, 사회적 환경을 함께 살폈다. 경찰과 교정에서 각각 나눠 보았던 범죄의 원인과 범행 이후의 문제를 하나의 사건 안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지금도 피고인과 수형자들을 만나 교육하고 재범 위험과 변화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범행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를 제대로 인식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준비가 됐는지, 실제 생활을 바꾸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미 일어난 피해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돕는 일은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 경찰과 교정, 법원을 거쳐 지금도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