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 31년의 기록②] 사형수 정두영의 도주 시도…직원들에게 돌아간 징계

전선 거치대 연결해 탈출용 사다리 제작
창문 빠져나가 전자경비 철망까지 넘어
소장 정직 3개월 등 직원 10여 명 징계

 

천안소년교도소 소년수 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8년 뒤, 대전교도소에서 근무하던 나는 그때와 닮은 사고를 다시 마주했다.

 

사형수 정두영의 도주 미수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장소와 내용은 달랐지만 작업장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이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고가 나자 법무부 감찰관실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며 조사 범위를 넓혔고, 두 기관의 소장은 모두 중징계를 받았다. 각각 10명이 넘는 직원도 징계 대상이 됐다.

 

정두영이 도주를 준비한 곳은 전선에 부품을 연결하는 작업장이었다. 당시 작업장 담당 직원이 교감 승진시험을 준비하면서 작업장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사이 정두영은 탈출 도구를 만들었다.

 

작업장에서 완성된 전선은 가로 30㎝, 높이 1m가량의 사다리 모양 틀에 아래부터 걸어 보관했다.

 

하나의 틀이 모두 차면 다른 틀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평소에는 틀을 바닥에 고정해야 했지만 사고 당시 일부는 고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두영은 이 틀 여러 개를 이어 붙여 탈출용 사다리를 만들었지만 작업장 폐방 후에도 사다리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 사고가 발생한 날은 마침 대전교도소의 6급 직원 인사이동일이었다.

 

해당 작업장에 새로 배치된 팀장은 아침에 작업장 인원을 점검한 뒤 부임 신고를 하기 위해 소장실로 향했다. 정두영은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도주를 시도했다.

 

정두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작업장 출입문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 작업장 창살 사이로 미리 만든 사다리를 빼낸 뒤 작업장에서 몇 미터 떨어진 전자경비 철망을 넘었다. 그는 다시 10여m 떨어진 외곽 담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외곽 담장은 넘지 못했지만 사형수가 작업장에서 직접 탈출 도구를 만들어 전자경비 철망을 넘고 외곽 담장까지 접근한 중대한 사고였다.

 

결국 사건 발생 며칠 뒤 법무부 감찰관실 조사팀이 대전교도소로 내려왔다.

 

조사팀에는 내가 알고 지내던 직원도 한 명 있었다. 정문 앞에서 몇 년 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천 계장님, 여기 소장 왜 그래요? 투서가 몇 건 들어와 조사하러 오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사건이 터져서 내려온 겁니다.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천안소년교도소 사건 당시의 감찰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정두영의 도주 시도만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장의 관리 책임을 묻기 위해 여러 직원의 근무상 과실까지 들여다볼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감찰은 사고 당일 근무자뿐 아니라 이전에 작업장을 점검했던 직원들에게까지 확대됐다.

 

사고 며칠 전 작업장 폐방 후 검사를 맡았던 직원 4명은 정두영이 만들어 놓은 사다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봉 처분을 받았다.

 

사고 당일 자리를 비웠던 팀장은 해당 작업장에 배치된 첫날이었지만 경징계를 받았다.

 

소장과 사고 당일 근무자에게는 각각 정직 처분이 내려졌고, 전임 팀장도 경징계를 받았다.

 

보안과장과 당직 근무자 4명은 경고 처분을 받는 등 이 사건으로 징계나 경고를 받은 직원은 소장을 포함해 10명이 넘었다.

 

감찰이 진행되던 중 나는 정두영이 출역했던 작업장을 직접 찾아갔다.

 

당시 작업장은 이미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시설 보완이 이뤄진 뒤였다. 전선 거치대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바닥에 고정돼 있었고, 거치대를 밖으로 빼낼 수 없도록 창살 사이도 좁게 고쳐져 있었다.

 

후임 작업장 담당자는 사고 당시 전선 거치대가 고정돼 있지 않아 정두영이 여러 개를 연결할 수 있었고, 완성한 사다리를 기존 창살 사이로 빼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법무부 감찰은 시설과 작업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살피기보다 직원별 과실을 찾아 징계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작업장 담당 직원은 원래 사동에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거실 난방화 공사로 고정된 근무지가 없어 일일배치 근무를 하던 중 기존 작업장 담당자가 암 투병으로 장기 병가를 내자 대신 작업장을 맡게 됐다.

 

그는 작업장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고 당일에는 근무하지도 않았지만 관리 책임을 이유로 교위에서 교사로 강등된 뒤 의정부교도소로 전출됐다.

 

그 직원은 몇 년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천안소년교도소 소년수 폭행 사건 당시 정비공장 담당 직원도 현직에 있던 중 암으로 사망했다.

 

서로 다른 사건의 작업장을 맡았던 두 직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감찰과 징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직원도 있었다.

 

천안소년교도소에서는 한 수용자에 대한 폭행 사건으로 직원 10여 명이 징계를 받고 30여 명이 다른 교정시설로 전출됐다.

 

8년 뒤 대전교도소에서도 정두영의 도주 시도로 소장이 정직 처분을 받고 직원 10여 명이 징계나 경고를 받았다.

 

두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난 구조적 원인을 찾아 개선하기보다 징계할 직원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모습은 씁쓸하게 남았다.

 

천안소년교도소의 소년수 폭행 사건도, 대전교도소의 정두영 도주 미수 사건도 이제는 오래전 일이 됐다.

 

그러나 사고가 난 뒤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는 것보다 현장의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바로잡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30년 넘게 교정공무원으로 살아오며 누구보다 이 조직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누군가를 내세워 서둘러 마무리하는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남는다.

 

징계로 사건을 끝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과 작업 방식, 인력 운용까지 바꿔 같은 사고를 막는 것, 그것이 현장을 지켜온 직원들의 아픔을 헛되게 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교정조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