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은 사복, 민사재판은 수용복…인권위 “제도 개선해야”

현행법, 형사절차 출석 수형자에 사복 허용
민사절차는 제외…사복 불허 진정은 기각
“수용복 낙인·위축, 재판 참여에 영향”
도주·계호 위험 없으면 허용하도록 의견

 

국가인권위원회가 민사재판 등 사법절차에 출석하는 수형자도 사복을 착용할 수 있도록 법령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무부 장관에게 표명했다.

 

30일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3월 수도권의 한 구치소에 수용 중인 수형자가 민사사건 기록의 열람·등사를 위해 출정하면서 사복을 입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구치소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수형자는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구치소 측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고 답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도 현행 법률과 과거 헌법재판소 결정을 고려해 진정을 기각했다.

 

다만 개별 조치가 현행법에 부합하는지와 별개로, 민사절차에 출석하는 수형자의 사복 착용을 허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형집행법 제82조는 미결수용자가 수사·재판·국정감사 또는 법률로 정하는 조사에 참석할 때 사복을 착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소장은 도주 우려가 크거나 특히 부적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교정시설에서 지급하는 의류를 입게 할 수 있다.

 

형이 확정된 수형자에게는 제88조의 준용규정이 적용된다.

 

형사사건으로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수형자와 사형확정자에 대해서는 제82조를 준용하지만, 민사재판 출석 수형자에 대한 사복 착용은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 수원고법도 별도의 형사재판을 받는 수형자에게 사복 착용이 허용되더라도, 그 범위가 민사재판 출석까지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러한 구분은 2015년 헌재 결정과 이후 법률 개정으로 이어졌다. 헌재는 같은 해 12월 23일 형사재판에 출석하는 수형자에게 사복 착용을 허용하지 않은 당시 제8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수형자라도 별도의 형사사건에서는 미결수용자와 같은 피고인의 지위에 있으며, 수용복이 유죄의 선입견을 형성하고 방어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봤다.

 

이후 2016년 법률 개정으로 수형자의 형사절차 출석 시 사복 착용이 인정됐다.

 

반면 헌재는 민사재판에 출석하는 수형자의 사복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인격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민사재판에서는 수용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법관이 불리한 심증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고, 형사법정과 다른 시설·계호 여건도 고려했다.

 

당시 재판관 3명은 반대의견을 냈다.

 

민사재판에서도 수용복이 수치심과 위축감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송 중에는 지급 의류를 입히더라도 법정에서는 사복을 허용하는 등 덜 침해적인 방법이 가능하다고 봤다.

 

인권위는 민사재판 역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법절차라는 점을 강조했다.

 

수형자에게 수용복을 입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낙인효과와 심리적 위축을 초래해 실질적인 재판 참여와 권리행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2020년 수형자의 사복 착용권을 미결수용자와 같은 수준으로 보장하고, 적용 범위를 형사사건뿐 아니라 민사사건 등 일반재판까지 확대하도록 법률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형집행법 제4조의 수용자 인권 존중 원칙과 국제 인권 규범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민사재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법절차에 출석하는 수형자도 도주 우려 또는 계호상 특별한 위험이 없는 경우 사복 착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과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