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고위공직자와 부유층의 집을 골라 담을 넘고 현금과 보석을 훔치던 조세형에게 세상은 ‘큰 도둑’이라는 뜻의 ‘대도(大盜)’라는 별명을 붙였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털지 않고 훔친 돈 일부를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일부에서는 그를 ‘현대판 홍길동’이나 ‘의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과 세간에 전해진 이야기와 달리 조씨의 삶은 검거와 수감, 출소와 재범으로 이어졌다. 부잣집만 턴다는 절도범…‘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유명세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조씨는 생계를 위해 절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붙잡혀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출소하면 다시 범행하는 생활을 반복했으며, 1982년 검거될 무렵에는 이미 여러 차례 절도로 처벌받은 상태였다. 조씨가 주로 노린 곳은 고위공직자와 기업인 등 부유층이 거주하는 주택가였다. 담을 넘어 집 안에 들어간 뒤 현금과 보석 등 들고 나오기 쉬운 물건을 챙겼으며, 피해자 중에는 김준성 전 경제부총리와 고려병원 이사장이었던 조운해씨도 있었다. 그가 훔친 물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받은 것은 이른바 ‘물방울 다이아몬드’였다. 고가의 보석과 거액의 금품이 절도사건에 등장하자 누가 이런 재산을 갖고 있
1997년 1월 20일 새벽 3시쯤 부산교도소. 무기수 신창원은 수용실 화장실 환기구의 쇠창살을 잘라내고 가로 32㎝, 세로 28㎝가량의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교도소 담장 밖으로 빠져나온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신창원은 좁은 환기구를 통과하기 위해 두 달가량 식사량을 줄이며 몸무게를 15㎏ 가까이 감량한 것으로 알려졌다. 쇠톱날로 쇠창살을 조금씩 자르면서 절단 부위를 감춰 교도관들의 눈도 피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도피는 2년 6개월, 정확히 907일 동안 이어졌다. 경찰은 전국에 수배망을 펼치고 헬리콥터와 전경까지 투입했다. 현상금은 처음 5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랐지만 신창원은 여러 차례 경찰과 마주치고도 검거 직전 달아났다. 경찰의 추적이 거세질수록 그의 이름은 오히려 더 널리 알려졌다. 결국 그가 붙잡힌 것은 형사도, 대규모 검거반도 아닌 가스레인지 수리기사의 눈썰미 때문이었다. 가난과 절도로 얼룩진 어린 시절 신창원은 1967년 5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뒤 가난과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뒀다. 그는 훗날
2007년 어느 날 서울구치소의 한 독거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교도관 A씨였다. 문은 안에서 열 수 없는 구조였다. 밖에서 다른 교도관이 열어주지 않으면 A씨 역시 수용자와 함께 거실 안에 머물러야 했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혼자 있었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서울 일대에서 노인과 여성 등을 잇달아 살해했다. 검찰은 21명에 대한 살인 혐의로 그를 재판에 넘겼지만 이 가운데 이문동 살인사건은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이 인정한 희생자는 20명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후 20년 넘게 사형 확정자 신분으로 교정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수용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독거실에서 비교적 조용히 생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교도관과 충돌해 징벌을 받았고,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성인물을 교도관을 통해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구치소를 떠나 대구교도소로 이송됐다가 2023년에는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왔다. 수용 초기 유영철의 생활은 의외로 조용했다. 2008년 당시 서울구치소 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그의 하루는 규칙적이었다. 오전 6시쯤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정돈한
2022년 봄, 인천구치소에 수용돼 있던 20대 남성 D씨에게 구치소 안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사기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D씨는 2021년 9월부터 인천구치소에서 수용생활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한 차례 수감생활을 했던 그는 인천구치소에 들어온 다음 날 작성한 초기상담 설문지에서 신체·정신질환이나 중독 문제가 없고 공동생활에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D씨는 같은 수용실에서 생활하던 다른 수용자에게 두 차례 폭행을 당했다. 4월15일과 18일 이어진 폭행으로 오른쪽 쇄골 부위가 골절되는 상해를 입자 구치소는 가해 수용자와 분리하기 위해 D씨를 다른 수용실로 옮겼다. 폭행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새로 옮겨간 방에서도 D씨의 수용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폭행 피해 피해 방 옮겼는데…새 수용실에서도 시작된 괴롭힘 D씨가 새로 생활하게 된 수용실에는 20대 수용자 H씨와 C씨 등이 함께 있었다. H씨는 D씨가 방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2년 4월27일부터 5월19일까지 매일 한 차례 이상 그의 뒤통수를 손으로 때렸고,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게 하거나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엎드리도록 했다. 같은 방에 있던 C씨
1919년 3월 말 경남 마산의 부산감옥 마산분감 안팎에서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한독립만세.” 감옥 밖에서는 만세운동 과정에서 붙잡혀 수감된 사람들을 석방하라며 시위대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철창 안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들도 이에 화답했다. 감옥 담장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만세 함성이 이어지던 그때 뜻밖의 사람이 시위대에 가세했다. 시민도, 감옥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도 아니었다. 이들을 관리하는 부산감옥 마산분감의 조선인 교도관 박광연(朴光淵)이었다. 박광연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교도관 제복을 벗어던지고 시위대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를 본 군중들은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박광연은 1889년 4월6일 경남 마산부 외서면 동성리,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1919년 3·1운동 당시 마산부 오동리에 있던 부산감옥 마산분감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산감옥 마산분감은 마산경찰서 유치장을 빌려 감방으로 사용했으며 1913년 별도의 부지를 마련해 신축 이전했다. 당시 청사와 중앙간수소, 감방 2개 동, 공장, 구치감, 여감 등이 들어섰고 구내 면적은 2000여 평이었다. 이후 1923년 5월 부산형
2022년 7월 초 강원 원주시 원주교도소의 한 수용실에 60대 수용자 B씨가 들어왔다. 당시 66세였던 그는 같은 방 수용자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교도소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수용실에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다른 수용자들과 심하게 충돌한 사람은 아니었다. B씨가 A씨와 같은 수용실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그해 7월7일쯤으로, 두 사람이 한 방에서 함께 지낸 기간은 채 20일도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씨는 B씨의 말투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주 화를 냈고 때로는 욕설까지 했다. 같은 방 수용자들이 보기에 B씨는 나이가 많고 힘도 약해 A씨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반면 A씨는 B씨에 대한 A씨의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같은 방 수용자들이 듣는 앞에서 B씨를 두고 “상으로 대가리를 깨 부시든지 해야겠어요”라는 섬뜩한 말을 꺼냈다. 단순한 짜증 섞인 말로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며칠 뒤 그의 표현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2022년 7월25일 A씨는 B씨를 두고 “정말 못 참겠다. 지금이라도 죽이
한때 연인이었던 사람이 “이 일만 해결해주면 다시 함께 살자”고 약속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한 남자는 수감 중 보낸 편지에서 그 약속을 믿고 생면부지의 사람을 쇠망치로 내리쳤으며, 한밤중 전북 무주까지 찾아가 차량에 불을 지르고 아무런 원한도 없는 택배기사의 화물차까지 태웠다고 자백한다. 2024년 10월 4일 새벽 경기 화성의 한 택배 물류센터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화재와, 수감자가 보낸 한 통의 편지로 그보다 앞서 벌어진 범행들까지 드러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일 물류센터 주변에는 여러 대의 차량이 세워져 있었지만 불이 난 것은 택배기사 D씨의 화물차뿐이었다. 경찰은 누군가 특정 차량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추적했다. 그 결과 화재가 발생하기 전 차량 주변을 여러 차례 오가며 불을 붙이려 한 A씨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나 A씨와 D씨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였고 금전 관계나 개인적인 원한도 없었다. 경찰에 붙잡힌 A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다. 이후 자동차 방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복역 중 피해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
여름철이면 교정시설에는 외부 봉사단체가 기부한 얼음물과 생수가 들어온다. 냉방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수용동에서 물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무더위를 견디기 위한 필수품에 가깝다. 지금은 수용자들이 생수를 자비구매물품으로 살 수 있지만, 과거에는 취사장에서 수백 명이 마실 물을 한꺼번에 끓여 각 수용동에 공급했다. 자비구매물품은 교정시설 수용자가 국가에서 지급하는 물품 외에도 속옷과 세면용품, 식품 등을 자신의 돈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수용자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물건이나 교도소 안에서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품목의 필요성과 수용자 선호도, 가격과 품질, 보관 가능성, 안전성 등을 검토한 뒤 자비구매물품으로 지정해야 한다. 전국 교정시설은 외부 시장과 달리 경쟁이 제한돼 있어 신규 품목으로 지정되는 것 자체가 업체에는 상당한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2013년을 전후해 교정시설의 식수 공급 방식이 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폐쇄된 시장을 둘러싸고 고위 교정공무원과 교정위원, 납품업체가 얽힌 청탁 사건이 발생한다. 2013년 당시 교정행정을 총괄하던 교정본부장 A씨에게 오랜 지인 L씨가 찾아왔다. L씨는 생수와 양념꽁치, 양념소스를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군의 신병을 한국 사법당국이 곧바로 확보하지 못하고, 교도소 수감 이후에도 일반 수용자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 발생했다. 1992년 10월 28일 오후 4시30분쯤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셋방에서 미군 전용클럽 종업원 윤금이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이 방문을 열었을 당시 윤씨는 온몸에 피멍이 든 알몸 상태였으며, 생식기에는 맥주병 2개가 들어가 있었고 질 밖에는 콜라병 1개가 박혀 있었다. 또 항문에서 직장까지 약 27㎝ 길이의 우산대가 꽂혀 있었고, 온몸에는 하얀 합성세제 가루가 뿌려진 채 입에는 부러진 성냥개비가 물려 있었다. 부검 결과 윤씨는 콜라병으로 머리와 얼굴 부위를 맞아 발생한 전두부 열창과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으며, 사망 시각은 같은 날 오전 2시쯤으로 판정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확보한 피 묻은 셔츠와 맥주병 지문, 사건 전날 윤씨와 한 미군 병사가 다투는 모습을 본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 사건 발생 사흘 뒤인 10월 31일 오전 0시30분쯤 미2사단 정문 앞에서 부대로 돌아가던 미 육군 소속 케네스 리 마클 3세 이병을 붙잡았다.
하늘을 꿈꾸게 하는 이름, 조종사 조종사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많은 남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구름 위로 솟구치는 영화 ‘탑건’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기체를 몰고 하늘길을 가르는 파일럿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많은 이들이 한 번쯤 품어본 로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종사가 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군사관학교는 오랫동안 ‘하늘로 가는 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2019학년도 공군사관학교 제71기 사관생도 선발 경쟁률은 41.3대 1에 달했고, 해마다 수십 대 1 안팎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입학 문턱은 높았다. 일부 비조종 분야 선발이 있기는 하지만, 공사는 기본적으로 공군 장교와 조종 자원을 길러내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지원자 상당수는 조종사의 꿈을 품고 공사 문을 두드린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한 남성은 훗날 전 직장 동료들의 집 앞까지 찾아가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그는 일산서구의 한 주거지에서 전 직장 동료였던 항공사 기장을 덮친 뒤 도구로 목을 졸라 살해하려 했으나 피해자가 저항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현장을 벗어난 그는 부산으로 이동했고, 다음 날 오전 부산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