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자가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정의 역할이다. 교도소 안에서 규율을 지키도록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과 작업 등을 통해 스스로 생활을 바꾸고 출소 이후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교정시설은 수형자의 생활태도와 교육·작업 성적, 도주 위험성 등을 살펴 처우등급을 정한다. 이후 수용생활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따라 등급을 조정하며, 등급별로 접견과 전화통화, 자치생활 등의 처우를 달리한다. 수용생활 중의 노력이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제도다. 생활성적에 따라 처우 완화…1956년 행장심사 마련 수형자의 개선 정도에 따라 처우를 완화하는 방식은 정부 수립 이전부터 존재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는 수형자를 4급부터 1급까지 나누고, 각 계급에서 정해진 책임점수를 채우면 상위 계급으로 올리는 누진처우가 실시됐다. 미군정기에는 규율 준수와 작업성적, 선행 등 자신의 노력에 따라 형기를 단축하는 선시제도가 도입됐다. 다만 ‘대한민국 교정사’는 당시 불안정한 수용 환경과 운영상의 문제로 이 제도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1956년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 후회 없이 행복하게.” 여러 개의 철문을 지나 들어선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소년학교’ 운동장 한쪽에 적힌 문구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운동장 옆 강당에서는 남색 체육복을 입은 소년수형자들이 농구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교실에서는 수학 수업이 한창이었고 교정시설 안에 마련된 학교에서 소년수형자들의 일과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22일 찾은 서울 구로구 만델라소년학교는 소년수형자들에게 검정고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 등 교과교육을 제공하는 소년 전담 교육시설이다. 2023년 문을 연 이곳에서는 교과 수업과 함께 상담, 체육활동 등이 이뤄지고 있다. 학교에 들어서려면 신분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발급받은 뒤 교도관들이 지키는 철문을 차례로 통과해야 했다. 이동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소년수형자들이 철봉 운동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줄을 맞춰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교정시설 안쪽에 자리한 학교는 교무실과 상담실, 교과 전담 교육실, 자습실, 전용 운동장 등을 갖추고 있다. 학교 이름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이름을 담았다. 만델라가 남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오전 5시, 대부분의 도시가 아직 잠에서 깨기 전 교도소에서는 하루 중 가장 이른 출소가 시작된다. 형기를 모두 마친 수형자가 담장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다. 가석방자는 통상 오전 10시에 석방되지만 형기종료자는 형기가 끝나는 날 오전 5시 이후 교도소 문을 나선다. 형기종료자의 출소가 오전 0시가 아닌 오전 5시 이후에 이뤄지는 데에는 담장 밖의 사정도 있다. 형집행법은 형기가 끝나는 날 석방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그날이 시작되는 자정에 내보내도록 정하지는 않았다. 자정에는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드물고 가족이 마중 나오기도 어렵다. 여성과 노약자가 인적이 드문 시간에 혼자 이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지역사회의 안전도 고려됐다. 가석방자는 통상 오전 10시에 출소한다. 다만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허가서에 별도의 석방일시를 지정했다면 해당 날짜와 시각에 맞춰 석방해야 한다. 사면이나 가석방, 형집행면제·감형에 따른 석방도 관계서류에 별도의 시각이 적혀 있으면 이를 따라야 한다. 시각이 지정되지 않았다면 해당 서류가 교정시설에 도착한 때부터 12시간 안에 석방해야 한다. 출소자는 수용생활 동안 입었던 지급품을 반납하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얼굴
교도소에 갇힌 수용자에게 형기를 모두 채우기 전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가석방이다. 형이 확정됐다고 해서 모든 수용자가 선고받은 형기를 교정시설에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일정 기간을 복역한 뒤 수용생활과 범죄 내용, 재범 위험성, 출소 후 생활환경 등을 심사해 남은 형기를 사회에서 보내도록 하는 제도가 가석방이다. 지금과 같은 가석방 제도가 법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광복 이후지만, 그보다 앞선 조선시대에도 형 집행이나 구금 기간이 끝나기 전에 사람을 풀어주는 여러 제도와 관행이 존재했다. 조선시대 형벌은 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의 오형을 기본으로 했다. 이 가운데 도형은 죄인을 일정 기간 구속해 노역시키는 형벌로 1년부터 3년까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일정 기간 형을 복역한 수형자를 별도로 심사해 석방하는 제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국왕이 이미 확정된 형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사면·사유 제도가 있었고, 보증인을 세워 수인을 감옥에서 풀어준 뒤 재판이나 수사를 계속하는 보방도 운영됐다. 1453년 단종 때에는 도형 이하의 수인들을 보방해 계속 심문하도록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죄수들을 정기적으로 살펴 석방하는 일도 있었다. 1479년 성종 때
법무부가 수형자의 안정적인 사회 정착과 재범 방지를 위해 사회견학·봉사활동 등 지역사회와 연계한 외부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사회견학·봉사활동에 참여한 수형자는 3680명으로 전년의 896명보다 4배 넘게 늘었다. 형기 3년 미만 수형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10년 이상 장기수와 무기수도 포함되면서 교정시설 안에서 이뤄지던 사회복귀 준비가 점차 외부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4일 ‘2026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참여자 가운데 형기 3년 미만 수형자는 2113명으로 전체의 57.4%를 차지했다. 10년 이상 15년 미만은 276명, 15년 이상은 255명이었으며 무기수도 2명 참여했다. 법무부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전국 교정기관에서 사회견학과 봉사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견학은 희망센터 등 중간처우시설 수형자를 대상으로 마트·시장 방문이나 문화공연 관람 등의 기회를 제공해 출소 후 달라진 사회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봉사활동은 수형자와 교정공무원, 교정위원 등으로 구성된 ‘보라미봉사단’을 중심으로 복지시설 지원이나 농촌 일손돕기 등 지역 수요에 맞춰 진행된다. 마트 둘러보고 농촌 일손돕기…교도
‘셋방살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렸던 시절의 경험입니다. 몇 년 전, 검찰청 호송출장소에서 근무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호송출장소란 재판이나 검찰 조사 등을 위해 이동하는 수용자들을 잠시 머물게 하는 일시 수용시설로, 경찰과 교도관이 한 공간에서 함께 근무하며 관리하는 곳입니다. 제가 있던 곳은 검찰청 뒤편, 사람 왕래가 거의 없는 구석진 위치였습니다. 따로 지정된 흡연구역이 있긴 했지만,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환경 덕분에 근무자들은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가까운 야외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생길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사이 출장소 앞에 ‘금연구역’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누군가 보건소에 민원을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근무복을 입은 채 눈치를 보며 지정된 장소까지 멀리 이동해야 했고, 이전처럼 자유롭게 숨을 돌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더 억울하게 느껴졌던 건, 애초에 그 주변은 민원인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는 점입니다. 누가 신고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괜히 배신감까지 느껴졌고, 동료들끼리 농담 섞인 ‘공조수사’를 하며 신고자를 추정해보기도 했습
검방은 교정시설에서 빠질 수 없는 일상적인 업무 중 하나입니다. 정식 명칭은 ‘거실검사’라고 부르며, 수용자가 생활하는 거실이나 작업장 등 모든 생활 공간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절차입니다. 시설 내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리 방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검방이 시작되면 수용자들은 방 안쪽을 등지고 서 있어야 합니다. 검사 과정을 직접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근무자는 방 안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규정에 어긋나는 물건이 있는지 꼼꼼히 살핍니다. 문이 자동으로 닫히지 않게 하려고 슬리퍼를 끼워둔 모습처럼, 검방 때만 볼 수 있는 특유의 풍경들도 참 익숙합니다. 검사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물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끝을 뾰족하게 깎아 위험하게 변형시킨 칫솔부터, 만화책을 뭉쳐 만든 아령이나 모래를 채운 수제 운동기구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가끔은 과자 상자를 정교하게 오려 만든 카드처럼 나름의 ‘창작물’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물건의 주인을 찾으려 하면 대부분 “모른다”거나 “이미 출소한 사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검방 현장에서 매번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들입니다. 어떤 날은 전혀
접견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차분하고 격식 있는 만남의 자리가 아닙니다. 뉴스에서 보는 정상 간의 접견처럼 여유롭고 정돈된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교정시설에서의 접견은 훨씬 더 현실적이며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교정시설도 하나의 공공기관이다 보니 다양한 민원 업무가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접견입니다. 이 과정에서 근무자는 자연스럽게 규정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접견을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해야 하고, 방문자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접견 자체가 진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접견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휴대전화나 전자기기 같은 물품을 반입할 수 없으므로, 이를 보관함에 맡기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번거로움을 느낀 방문객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주변에서 대기하던 다른 민원인들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현장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규정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막상 접견이 시작되면 영화에서 보던 장면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집니다. 여러 건의 접견이 동시에 진행되며 시간도 10분 내외로 비교적 짧게 주어집니다. 직접 마주 앉기보
‘작은형’이라는 제목이 참 어울릴 만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재판이 끝난 직후, 판사가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선고한다”라고 주문을 낭독하자 수감자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라는 듯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보통은 형량이 줄어들면 안도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는 오히려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호송차로 이동하는 내내 “왜 이렇노…” 하며 불만을 내비치기에, 저는 형량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분은 알겠는데, 그정도면 아주 나쁜 결과는 아니지 않으냐”며 슬쩍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참 의외였습니다. 형이 너무 ‘적게’ 나와서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황당했습니다. 군 면제를 받으려면 형기가 더 길어야 하는데, 오히려 애매하게 짧은 형이 선고되어 계획이 틀어졌다는 논리였습니다. 본인은 일부러 합의조차 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라며 진심으로 답답해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상황 자체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오래 수감되기 위해 일부러 상황을 몰고 갔다는 식의 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어느
손톱깎이와 관련한 두 번째 이야기는 앞선 일상과는 전혀 다른, 훨씬 무겁고 치열한 현장의 기록입니다. 어느 날 한 수용자가 갑자기 “죽고 싶다”며 손톱깎이를 삼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이나 수감 생활에 대한 거부감, 혹은 공황장애나 우울증 같은 심리적 불안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즉시 의료과로 호송하여 확인 절차를 거쳤습니다. X-ray 촬영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뱃속에는 손톱깎이뿐만 아니라 칫솔 조각, 핀셋, 압정 같은 여러 가지 이물질이 한꺼번에 포착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배출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결국 외부 병원으로 긴급히 나가 내시경이나 수술을 통해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수용자가 외부 병원을 이용할 때는 보안을 위해 최소 3명의 교도관이 반드시 동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응급 상황은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 아니기에, 관련 직원들에게는 즉시 추가 근무가 통보되고 현장에 투입됩니다. 평온하던 근무 일과가 한순간에 긴박한 외부 호송 업무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이물질 취식’ 사건은 교정시설 내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발생 횟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