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추진 중인 대법관 증원 계획이 당초보다 축소된 규모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하급심 법관 확충 없이 대법관만 늘릴 경우 사법부 구조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사법개혁특위는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인 대법관 수를 향후 3년에 걸쳐 26명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마련해 당 지도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식 보고된 문건은 아니다”라며 공식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 6월 제시됐던 ‘대법관 30명 증원안’보다 4명 줄어든 규모다. 법원행정처가 제기했던 인력과 예산 부담 문제를 일부 반영한 조정안으로 해석된다.
현재 대법원에는 매년 약 3만 건에서 5만 건의 상고 사건이 접수된다. 사건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민주당은 상고심 사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대법관 수를 늘려 심리 역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관 수는 법률로 정해진다. 법원조직법 제4조는 대법원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한다. 현재 대법관 정원은 같은 법 제5조에 따라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대법관을 늘리기 위해서는 법원조직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사건 심리를 위해 재판연구관 제도를 운영한다. 법원조직법 제24조에 따르면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장의 명령을 받아 사건 조사와 법리 검토 등을 담당한다. 대법관이 늘어날 경우 이들을 지원할 연구 인력 역시 함께 확대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하급심 인력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판연구관은 통상 경력 10년 이상 법관이 맡는 경우가 많다. 대법관 증원이 곧바로 하급심 법관 인력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하급심 특히 1심 판사 부족이 이미 심각한 상황”이라며 “하급심 판사 수를 먼저 늘린 뒤 순차적으로 대법관을 확대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1심 인력 확충 없이 대법관만 늘리면 사법부 정치화 논란을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대법관을 지원하는 재판연구관은 대부분 경력 법관”이라며 “대법관을 크게 늘리면 연구관을 대폭 충원해야 하고 이는 결국 하급심 인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급심 법관 수를 충분히 확보한 뒤 증원을 논의해야 제도 균형이 맞는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일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대법관 수를 과도하게 늘리는 개정안은 재판연구관 인력 등 대규모 사법 자원이 대법원으로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경우 사실심 약화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상고 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헌법상 재판청구권과도 연결되는 문제인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27조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상고심 제도 역시 이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중요한 장치로 평가된다.
대법관 증원 논의가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법관은 헌법 제104조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된다. 특정 시기에 대법관 인사가 집중될 경우 사법부 구성에 정치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대법관 증원 자체는 필요할 수 있지만 특정 재판 시점에 맞춰 논의가 진행되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며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논의되는 안이 현실화될 경우 인사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계획대로라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체 26명의 대법관 가운데 22명, 약 84.6%를 임명하게 된다.
이는 새로 증원되는 12명뿐 아니라 2027년 정년퇴임 예정인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해 2030년 3월 이전 임기가 끝나는 노태악·이흥구·천대엽·오경미·오석준·서경환·권영준·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의 후임 인선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이뤄지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상고 사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법관 증원 논의 자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하급심 인력 확충과 상고 제도 개편 등 구조적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단순한 숫자 확대에 그칠 경우 사법 자원 배분 왜곡이나 판례 형성 과정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