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통이 밝혀낸 21년 전의 진실… 백선기 경사 피살 사건

  • 등록 2025.09.19 19: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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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제보자
공범과 갈등 빚자 편지 보내와

결정적 단서로 수사 재개되고
21년 만에 미제 살인 사건 해결

 

교도소에서 보내온 한 통의 편지가 21년간 미제 상태로 남아있던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 2002년 9월 20일 0시 50분경, 전주시 덕진구 금암2파출소에서 혼자 근무 중이던 백선기 경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백 경사가 소지하던 38구경 권총을 훔쳐 달아난 상태였다. 총에는 실탄 4발, 공포탄 1발이 장전되어 있었다.

 

당시 파출소에는 CCTV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고, 과학수사팀이 현장에 남아있는 지문을 채취해 분석했지만 대부분 경찰관의 지문으로 밝혀져 용의자 특정이 어려웠다.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된 때는 사건 발생 후 넉 달째인 2003년 1월 20일이었다.

 

용의자는 20대 남성 3명이었다. 당시 경찰은 “중학교 동창인 이들이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몰다가 백 경사의 단속으로 오토바이를 압수당하자, 이 오토바이를 찾으러 백 경사를 찾아왔다가 시비가 붙어 흉기로 살해하고 권총을 빼앗았다”고 발표했다. 용의자들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말다툼하다가 화가 좀 났다”며 범행 일체에 대해 자백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라진 권총과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찾지 못했다. 검거 이후 진행된 현장 검증에서 용의자들의 진술도 엇갈렸다. 급기야 용의자들은 경찰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거짓 자백을 했다고 진술을 뒤집어 2개월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전원 석방됐다. 이후 백 경사 피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었다.

 

 

사건을 반전시킨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피살 사건이 발생한 지 21년 만인 2023년 3월, 전북경찰청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은행 강도살인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받은 A 씨였다. A 씨는 편지에서 백 경사 피살 사건의 진범을 지목하며 사라진 권총의 행방을 알렸다. A 씨가 가리킨 곳은 울산의 한 여관방이었는데 실제로 그곳에는 백 경사가 탈취당한 권총이 있었다.

 

경찰은 A 씨가 같은 사건으로 검거된 공범 이 모 씨와 주범이 누군지를 두고 다투던 중 관계가 틀어지자 비밀을 털어놓은 것으로 판단하고 백 경사 피살 사건 전담팀을 꾸렸다. 경찰 조사 결과 백 경사의 권총이 발견된 숙박업소는 A 씨가 머물렀던 장소였다. 하지만 A 씨는 총기 보관은 자신이 했지만 범행을 한 건 이 씨임을 주장했다.

 

 

경찰은 심층조사를 통해 사건 당시 A 씨가 전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머물렀음을 확인했다. 반면 진범으로 지목당한 이 씨는 범행을 부인하며 계속해서 진술을 바꿨고, 진술과 일치하는 행적도 없음을 확인했다. 경찰은 110일의 심층 조사를 통해 이 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고, 그가 백 경사를 상대로 단독 범행했음을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제 사건이 21년 만에 해결된 순간이었다.

 

한편 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와 이 씨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A 씨라고 판단하고 무기징역과 20년 전자장치부착을 선고했다. 공범 이 씨에게는 징역 20년과 10년의 전자장치부착 명령을 내렸다. 이후 2심 재판부는 A 씨의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두 사람 모두 항소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소망 기자 somang@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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