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사라지면 내 재판은?”…폐지 추진 속 ‘경과규정’이 변수

  • 등록 2025.10.14 17:19:52
크게보기

법 개정 땐 면소가 원칙… 경과규정이 결과 좌우할 듯
배임죄 사라져도 재심 불가… 확정판결엔 효력 없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포함한 제도 개편안을 내놓자,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당정은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통해 형법상 배임죄를 삭제하고 대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1년 안에 경제형벌의 30%를 정비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배임죄 폐지 검토의 배경에는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 경영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이 사후적으로 범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형사처벌이 경영 판단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정부는 배임죄 전면 폐지로 인한 처벌 공백을 막기 위해 보완 입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배임죄를 전면 폐지할 경우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며 “범위를 좁히고 요건을 명확히 한 특별법 제정이나 개별법 개정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끼친 경우를 배임죄로 규정한다.

 

즉, 타인의 재산을 신탁받아 관리하는 사람이 그 신뢰관계를 저버렸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반면 횡령죄는 ‘보관 중인 타인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배임죄가 신뢰의 파기를 문제 삼는다면, 횡령죄는 재산의 유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배임죄가 실제로 폐지될 경우 가장 큰 관심은 ‘현재 재판 중인 사건’의 처리 방식이다.

 

형법 제1조는 “범죄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에 따른다”고 규정한다.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는 “범죄 후 법령 개폐로 형이 폐지된 때”를 면소 사유로 명시한다. 면소는 형사재판 중 소송 조건이 없어지면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해당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원칙적으로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법원은 직권으로 재판을 종결하고,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도 상급심이 원심을 파기해 면소 판결을 내리거나 환송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부칙에 “이 법 시행 전의 행위에는 종전 규정을 적용한다”는 경과규정이 포함될 경우,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폐지 이전에 발생한 행위에는 기존 형법상 배임죄 조항이 그대로 적용돼 재판이 이어진다.

 

즉, 신법이 소급되지 않고 종전 법률에 따라 재판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폐지 여부보다도 부칙의 문구가 더 중요하다”며 “경과규정이 삭제될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신법이 적용돼 면소가 가능하지만, 포함될 경우 재판은 계속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배임죄 폐지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아닌 국회의 입법 절차를 통해 추진된다. 두 방식 모두 법률의 효력을 없앤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형사재판에서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은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면 그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한다.

 

즉, 구체적인 사건에서 당사자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해당 조항은 결정 시점부터 즉시 무효가 된다.

 

2015년 간통죄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헌재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간통죄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이후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들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즉,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해당 법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돼 확정판결에도 소급해 효력을 미친다.

 

반면 국회가 법률 개정을 통해 형벌 조항을 삭제하는 경우는 헌법 제40조가 정한 입법권 행사에 해당한다.

 

입법 절차는 법률안 발의 → 상임위원회 심사 →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 본회의 의결 → 정부 이송 → 대통령 공포 순으로 진행된다.

 

국회 입법을 통해 폐지된 조항은 공포된 법률이 정한 시행일부터 효력을 잃는다. 또한 부칙에 “이 법 시행 전의 행위에는 종전 규정을 적용한다”는 문구가 포함되면 폐지 이전 행위에도 구법이 적용된다.

 

결국 헌재의 위헌 결정은 과거 판결에도 소급해 영향을 미치지만, 국회의 입법 폐지는 미래의 사건에만 효력이 미친다. 이미 확정된 사건은 재심 대상이 아니고, 진행 중인 사건만 면소 판결로 종결된다.

 

법무법인 예문정 정재민 변호사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즉시 면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포일과 시행일, 그리고 부칙 내용이 실제 효력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이 통과될 경우 경과조항 등을 확인해서,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재판에서 이를 적극 주장해서 면소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이미 배임죄로 형이 확정된 피고인도 변호사의 자문을 통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화 기자 movie@sisalaw.com
Copyright @더시사법률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