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버콘 고양이 살해’ 집행유예 논란…상향된 양형기준 실효성 흔들

  • 등록 2025.12.18 09: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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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학대에도 징역 6월 집행유예
동물보호단체 반발…“엄벌 취지 훼손”
최근 5년간 구공판 비율 2.9%에 그쳐

 

길고양이를 러버콘(안전고깔)에 가둔 뒤 살해한 남성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동물학대 범죄의 처벌 수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7월부터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에 대한 상향된 양형기준이 시행됐지만 실제 재판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16단독(이수웅 부장판사)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0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사회봉사 80시간과 동물학대 재범 예방 강의 40시간 수강도 함께 명령했다.

 

A씨는 지난 6월 27일 오후 11시 53분쯤 인천 중구 신흥동의 한 도로에서 길고양이를 붙잡아 러버콘에 가둔 뒤, 맨손으로 때리고 발로 여러 차례 짓밟는 등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고양이가 들어 있는 러버콘에 불을 붙였고, 쓰러진 고양이를 인근 화단에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고양이를 발로 짓밟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해 범행 경위와 수법에 비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동종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이 알려지자 동물보호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징역 6개월의 실형이 구형된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당위성과 명분을 찾기 어렵다"며 "어렵게 수립된 양형기준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재판부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초 동물학대 범죄의 처벌을 강화한 양형기준을 마련해 지난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기준에 따르면 동물을 살해한 경우 기본 형량은 징역 4개월~1년 또는 벌금 300만~1200만원이며,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징역 2개월~10개월 또는 벌금 100만~1000만원이 권고된다.

 

특히 범행의 잔혹성 등 특별 가중 요소가 인정되면 권고 형량 상한이 최대 2분의 1까지 가중되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 선고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송기헌 의원실이 법무부와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가운데 정식 재판(구공판)에 넘겨진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동물학대 및 불법 영업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는 4249명에 달했지만, 실형 선고나 구속으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은 ‘초범’이거나 ‘반성한다’는 이유로 수십만원 수준의 벌금형에 그쳤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동물학대 범죄의 중대성과 재범 위험성을 고려해 양형기준을 상향한 만큼 법원도 이에 부합하는 엄격한 법 적용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물학대는 그 자체로 중대한 범죄로 반복될 경우 다른 범죄로 확산될 위험이 커 결코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며 “처벌 단계에서 엄정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가해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이는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화 기자 movie@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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