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의 길을 오래 걷다 보니 필자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판사로 있을 때가 사람이 더 단단해 보였다”는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법복을 입고 재판정을 바라볼 때는 세상이 놀랍도록 정리되어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 보이고,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증거’가 보인다. 사실과 증거, 논리와 법리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그 자리는 겉으로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지금, 나는 그 ‘정리된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사정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더 자주 느낀다. 판사로 있었을 때는 기록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보니 그 기록에 닿기 전 의뢰인의 시간과 그가 어떤 사정으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그 마음의 길을 먼저 보게 된다. 법정 안에서는 정리되어 있던 사건이 변호사에게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판결문에 쓰인 문장은 단정하지만 그 몇 줄의 기록에 불과한 사정 뒤에는 한 사람의 가족, 삶의 무게, 그리고 수많은 감정이 있다. 판사의 일은 냉정하다. 결정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이 책상 위에 쌓이고 각 사건의 피고인, 피해자, 변호인, 검사가 제각각의 입장을 내세운다. 그 속에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때로는 사건의 결과보다 의뢰인의 ‘변화’를 증명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랬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의뢰인이 아니라, 의뢰인의 가족들이었다. 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족들은 필자를 찾아와 간절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꽤 오랜 시간 면담을 통해 확인한 사건의 실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의뢰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감금하고 강간을 시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였다. 기록을 살펴보니, 1심에서 의뢰인은 감금 혐의만 인정하고 강간미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강한 처벌 의사를 근거로, 의뢰인의 태도를 ‘책임 회피’로 판단했다. 반성의 부재,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그의 대응이 판결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징역 2년의 실형이었다. 항소심을 준비하며 필자는 이 사건의 초점을 ‘사건’이 아닌 ‘사람’에 두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관계만이 아니다. 사건 이후의 태도, 반성, 그리고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한 사건의 열쇠다. 법은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