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 범죄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지 2주 만에 또다시 허위 신고를 한 5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신윤주 부장판사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54)에게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25년 10월 11일 오전 3시 30분께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119에 전화를 걸어 “길가에 할머니가 흉기에 찔린 것 같다”며 허위 신고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출동한 구급대원과 경찰관 등 9명이 현장을 수색했으나, 신고 내용과 같은 사건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A씨는 국회의원에게 위해를 가한다며 경찰에 허위신고를 했다가 2024년 5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후 2025년 9월 28일 출소한 뒤 불과 2주 만에 재범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동일한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출소 직후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며 “허위 신고로 다수의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정당한 직무 수행을 방해한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범행의 동기와 경위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자매 성폭행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노영대(46씨)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강원 춘천시에 소재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강원지부에 거주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뉴스1에 따르면 경기지역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노 씨는 최근 출소 후 거주지를 춘천으로 정하고 사농동에 위치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강원지부에 입소했다. 노 씨는 약 두 달 전부터 해당 시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보호복지공단은 출소자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기관으로 숙식 제공과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을 돕는 역할을 한다. 공단 규정상 보호 기간은 기본 6개월이며, 이후 필요하거나 대상자가 원할 경우 6개월 단위로 최대 3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어 최장 2년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시설에는 야간 외출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법적으로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은 청소년 등 일부에 한정된다. 성인 입소자에 대해서는 권고 수준의 관리가 이뤄지며 전화로 보고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씨는 2012년 12월 경기 고양시에서 20대와 30대 자매가 함께 거주하던 주택에 침입해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도 함께 명령했다. 그는 당시 경찰에 검거된 이후 이동 중 도주했다가 닷새 만에 다시 붙잡혔고, 이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교도관을 밀치고 달아나려다 재차 제압되는 등 도주 및 도주 미수 전력도 있다. 현재 노영대의 이름과 나이, 신체정보, 사진, 주소 등은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일부 온라인 카페가 ‘정보 공유’의 외형을 넘어 특정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하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변호사 수가 4만 명을 넘어서며 수임 경쟁이 격화된 가운데, 일부 변호사들이 이러한 구조에 의존하고 그 틈을 타 이른바 ‘카페형 법조 브로커’가 개입하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회원 수 수만 명 규모의 일부 포털 카페에서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이 카페를 개설한 뒤 ‘무료 법률상담’을 내세워 상담을 유도하고 이른바 ‘사무장’이 전화를 걸어 특정 변호사 선임을 권유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겉으로는 단순 상담 안내나 정보 제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건 연결과 결합된 구조라는 것이다. 사건기록 유출...집행유예 선고 사례도 발생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운영자가 카페를 개설한 뒤 특정 변호사들을 ‘협력 변호사’로 홍보하며 사건 연결 통로로 활용하고 카페 소속 변호사를 선임한 회원에게만 수사자료나 사건기록을 열람하게 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된 혜택을 내세운 사례도 확인됐다. 2025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비밀준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여러 법무법인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재직 중인 법무법인이 수임한 형사사건 증거기록 파일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했다. 그는 해당 파일을 개인 USB에 저장해 보관한 뒤, 자신이 운영하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업로드했다. A씨는 2016년경부터 포털사이트에 성범죄 관련 카페를 운영하면서 카페 소속 변호사를 선임한 회원에게만 해당 자료를 열람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범죄 피해자들의 개인정보가 담긴 사건 기록을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해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공소사실은 일부 증거능력 문제로 무죄가 선고됐다. 수사기관이 플랫폼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영장 원본 제시와 참여권 보장 절차가 지연됐고 그 사이 확보된 자료 일부가 위법수집증거로 배제됐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한 상태로 전해졌다. “카페 통해 사건 연결” … 당사자는 혐의 부인 제보자들은 A씨가 대한변협에 사무원으로 등록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카페에 ‘협력 변호사’를 두고 1:1 무료 상담 게시판을 통해 카페 소속 변호사를 선임한 의뢰인들의 수사자료를 동의 없이 보관·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아울러 A씨는 카페에서 활동하던 B, C씨 변호사와 함께 카페를 통해 선임된 의뢰인의 수임료를 나눠 가진 구조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금품을 받고 법률사건 등을 변호사에게 소개, 알선하였다는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A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A씨는 아동성착취물 영상 피해자 사진을 동의 없이 첨부해 업로드한 정황도 드러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당시 협력 변호사로 활동했던 C씨가 A씨와 함께 유사한 방식의 카페를 다시 개설·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A씨는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또 다른 유사 카페를 개설해 ‘1:1 무료 법률상담’을 내세워 변호사를 연결한 의혹으로 수사기관에 입건돼 추가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A씨는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강화만으로는 한계”… 제도적 보완 필요성 제기 카페 기반 브로커 구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개인회생·파산 신청자를 상담한 뒤 특정 변호사에게 사건을 넘기고 수임료를 나눠 가진 브로커가 변호사법 및 법무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됐고, 사건을 제공받은 변호사들과 명의를 빌려준 법무사들도 입건됐다. 당시 수사 결과 상담·서류 작성·사건 연결·정산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패키지 영업’ 구조가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변호사 수 증가로 수임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변호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사건 유입에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특정 주제를 내세운 카페를 개설하고 ‘1:1 무료 법률상담’ 카테고리를 만들어 변호사가 직접 상담하는 것처럼 외형을 갖춘 뒤, 사건을 특정 변호사에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안정적 사건 유입을 기대하고, 운영자는 소개 대가를 받는 구조다. 브로커 시장을 완전히 근절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방식이 은밀해질수록 위법 행위를 입증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단속 역시 사후 대응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브로커들이 활개칠 경우 알선료를 충당하기 위해 변호사 수임료가 인상될 수 있고, 그 부담은 결국 의뢰인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변호사 선임의 공정성과 사건 당사자 보호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변협의 규제가 과도해질 경우 음성적 브로커 시장이 오히려 확산될 수 있다”며 “공식적인 사건 유입 통로가 좁아질수록 비공식 연결 방식은 더욱 은밀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나는 매주 1회 직접 접견하면서 구속된 피고인을 만난다. 화려한 광고를 보고 큰 로펌을 찾아갔는데 수임료를 낸 이후부터는 구치소에서 변호사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심지어 재판 때마다 변호사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정작 피고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도 벌어지곤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변호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실제로 직접 구속된 피고인을 매주 만나다 보면 접견실에서만 발견되는 진실이 있다. 형사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와 논리는 바로 이 ‘접견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변호사라고 해도 의뢰인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사건의 진짜 핵심을 놓칠 수밖에 없다. 수사 기록에는 경찰과 검사의 시각으로 정리된 ‘사실’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접견실에서 피고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면 단 한 줄의 기록에 숨어 있던 모순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반복하며 진실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형사변호의 시작이다. 실제로 내가 담당했던 사건 중에는 두 번째 접견 때 피고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무죄 판결의
형사사건에서 ‘구속’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국가형벌권 실현을 위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강력한 처분이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원칙이 아니라 예외로 두고 있으며, 구속이 타당한지 여부를 다시 판단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바로 구속적부심사와 보석이다. 이 두 제도는 모두 구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청구(신청) 시기와 판단 기준은 분명히 다르며, 무분별하게 신청하여 기대만 키웠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법원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어떤 사정이 있을 때 기존 판단을 바꾸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구속적부심사는 법원이 구속의 적법 여부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절차다. 최초 구속결정이 적법한지 여부에 더하여 구속 이후 새로 발생한 사유까지 포함하여 구속을 계속할 필요성이 여전히 있는지를 판단한다. 구속적부심사는 구속된 피의자, 변호인,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나 가족, 동거인 또는 고용주가 청구할 수 있다. 공소제기 전까지 청구 가능하며, 수사 방해 목적 등이 없는 경우 청구서 접수 시부터 48시간 이내에 심문이 진행된다. 구속적부심사에서 법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같은 제복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이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각종 복지와 예우 제도에서 교도관은 반복적으로 제외되고 있다. 제복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혜택과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포함되어 있으나 교도관은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호국원 안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마저도 같은 제복공무원인 교도관들의 존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소외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교도관 개개인의 자존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가 퇴직 교도관 역시 호국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곳에 안장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는 교도관 전체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 직업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되찾기 위함이다. 교도관의 업무는 단순히 수용자를 관리·감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교도관들은 어떤 죄명으로 수용되었든 수용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운동시간과 종교집회 참가 등을 철저히
저는 일주일 중 한 번 있는 전화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허락된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 힘든 생활도 잊어버린 채 짧고 소중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도 아들 기죽지 말라며 학부모회 임원까지 맡으셨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늘 나서서 도와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 덕분에 원하는 과에 입학한 것은 물론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온 후, 아버지와의 첫 접견 때가 떠오릅니다. 며칠을 못 주무셨는지 충혈되어 있던 눈, 말씀하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손, 어느새 흰서리가 가득 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죄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저에게 “걱정하지 마라. 아프지 말고 힘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편의점 일을 하시며 하루 19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젊은 저도
요즘따라 더욱 보고 싶네요. 이제 나를 기다릴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당신은 벌써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요. 솔직히 밉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붙잡을 수도 없어요. 나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걸림돌이라면 당신을 위해 비켜주는 게 도리겠죠. 이곳에서 몇 번의 계절을 맞이했지만 제 마음의 계절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겨울날에 멈춰있어요. 사회에 나오면 연락하라며, 친한 오빠로서 밥 한 끼 사주겠다는 당신의 그 말이 저를 너무 슬프게 만들어요. 매일 밤 당신의 편지를 꺼내 보며 우는 저이지만, 이젠 정말 당신을 제 마음속에서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제 지인과 잘 되어가는 중이라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어요.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이곳에 와서 가장 소중한, 내 전부였던 당신을 떠나보내게 되었네요. 이 또한 제 업보겠죠. 행복했던 저와 그때의 다정했던 당신은 추억 속에 담아둘게요. 그러니 당신은 부디 행복하세요. 2026년 겨울, 배배가
찬 바람이 얼굴에 스치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분명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가끔은 왜 사는지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게 됩니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어머님마저 먼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교정직원에게 전해 들을 당시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 그분의 기일과 어머님이 가신 날이 같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그때 느낀 두려움은 살아오면서 처음 겪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눈물밖에 흐르지 않았고, 한동안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노하셔서 제게 외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잊지 마라, 잊지 마. 죽는 그날까지!” 그날 이후로 저는 그 분노 가득한 음성을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지만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날이 오면 이제 저는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그 숨이 끊기는 듯한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365분의 1의 확률입니다. 저는 이제 죄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죄의 무서움을
어머니, 이곳에 와서 벌써 네 번째 맞는 겨울입니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하면서도, 지나고 보니 언제 이렇게나 되었나 싶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십 중반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제 모습을 보니 어머니께 죄송스럽습니다. 못난 모습 보여 죄송합니다. 이제 9개월가량 남은 수용생활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겠습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항상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범수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출소 후 그동안 속만 썩이고 고생시켜 드린 어머니께 열심히 효도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못난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