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경남 창원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강도 살인 사건과 관련해 무기징역이 확정된 아크말씨의 재심 사건 두 번째 심리가 열렸다. 아크말씨 측은 이 사건은 자백에 의존해 유죄가 인정된 구조인 만큼, 감정 결과와 수사 기록을 토대로 자백의 신빙성을 다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원지법 형사2부(재판장 김성환)는 12일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30대 보조로브 아크말씨의 재심 청구 사건 두 번째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아크말씨는 2009년 3월 경남 창원에서 택시기사 박모씨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후 2015년 한 차례 재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아크말씨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재판 직후 <더시사법률>과 만나 “이번 기일에서는 향후 어떤 증거를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지에 대한 큰 틀이 정해졌다”며 “이 사건은 자백이 핵심 증거인 구조인데 그 자백이 객관적 자료와 맞지 않는 지점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범행 도구와 범행 방식, 범행 이후 행적과 관련한 자백 내용이 국과수 감정 결과와 현장 자료와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백에 따르면 끈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끈의 성분 분석 결과나 현장 흔적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혈흔이 묻은 의류 등 현장 물증에서도 피고인의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금품 강취와 관련해서도 “자백과 달리 현장에서 금품이 남아 있던 정황이 확인된다”며 “이 역시 자백의 신빙성을 다시 살펴볼 필요 있는 근거”라고 했다. 이날 재판부는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관들과 법의학·기록 분석 등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체포 및 자백 경위, 감정 결과의 타당성 등을 법정에서 검증하기로 했다. 박 변호사는 향후 증인신문을 통해 자백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다툴 방침이다. 아울러 박 변호사는 범행에 사용됐다고 지목된 공업용 커터칼을 “동네 마트에서 구입했다”는 취지의 자백 내용과 관련해 당시 판매처로 지목된 마트 운영자도 증인으로 채택됐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마트에서는 공업용 커터칼을 판매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려는 것”이라며 “범행 도구 구입과 관련한 자백의 신빙성도 법정에서 검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오는 4월 7일 심리를 이어갈 예정이다.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 김은경, 이하 ‘신복위’)는 12일 신용상담 활성화와 신용상담기구 간 협력 강화를 위해 ‘신용상담 활성화를 위한 신용상담기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신복위 주관으로 열렸으며, 민간 신용상담기구 8곳과 금융복지상담센터 11곳 등 전국 19개 주요 신용상담기구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개인채무조정 제도 개선사항 안내, 불법사금융 피해 지원제도 소개, 신용상담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김은경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취약계층의 재기를 위해 헌신하는 현장 관계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돼야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개선된 지원책이 필요한 분들에게 빠짐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상담기구가 ‘희망의 연결고리’가 되어달라”고 강조했다. 신복위는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신용상담기구와의 협업 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취약채무자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맞춤형 재기 지원 제도를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보험금을 노려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고(故) 장동오 씨가 사건 발생 23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과거 판결을 다시 심사하는 재심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그 출발점이 되는 수사·재판 기록이 보존기간 만료를 이유로 사라지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구조적으로 제약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검찰에 따르면 형사사건 기록의 보존과 폐기는 별도의 법률이 아니라 법무부령인 ‘검찰보존사무규칙’과 대검 예규에 따라 운영된다. 해당 규칙은 수사·재판 기록뿐 아니라 디스크·테이프·전자기록 등 특수매체 자료까지 보존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보존 기간은 원칙적으로 ‘형의 시효’ 또는 ‘공소시효’에 연동된다. 문제는 이러한 자료 관리 방침에서 재심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더시사법률> 질의에 “폐기 전에 재심이 개시된 사건은 기록이 폐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재심 청구 이전 단계에서 당사자나 변호인이 준비 중인 사실을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보존시효가 완성되면 기록이 폐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검찰보존사무규칙에 따르면 형이 선고된 확정 사건 기록은 형의 시효 완성 시까지 보존된다. 무죄·면소·공소기각·선고유예 사건은 공소시효 기간 동안 보존되며, 불기소 사건 역시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심사와 심의를 거쳐 기관장 허가로 폐기될 수 있다. 재심 절차가 통상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전제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구조는 제도 취지와 충돌할 소지가 크다는 평가다. 일부 중대 사건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도 있다. 대검 예규 ‘영구(준영구) 보존할 중요사건기록 등의 선정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거나 국가 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 사회적 이목을 끈 중대한 사건, 죄질이 극악하거나 범죄 수법이 특이·지능화된 사건 등은 영구 또는 준영구 보존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중요 사건’에 해당하는지는 법률이 아닌 내부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 결국 재심 준비 사실을 검찰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존기간이 만료되면 기록은 그대로 폐기될 수 있는 구조다. 이로 인해 재심 사건 상당수는 기록 부재라는 벽에 가로막혀 왔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사건 기록이 이미 폐기된 상태였고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 역시 검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외부 자료가 재심의 단서가 됐다. 사형 확정 사건의 경우 형의 시효가 30년인 점을 감안하면 뒤늦게 진상 규명에 나서더라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더욱이 검찰은 형사 기록 폐기 규모에 대한 통계조차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더시사법률> 질의에 최근 10년간 보존기간 만료로 폐기된 형사사건 기록의 연도별 총 건수에 대해 “전국 검찰청 차원의 통계를 작성·관리하고 있지 않아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 재심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과거 기록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있는지 국가 차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기록 보존 문제를 단순한 행정 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사법 신뢰와 인권 회복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심은 과거 판결을 오늘의 기준으로 다시 심사하는 절차이지만, 그 출발선에 있어야 할 기록이 ‘시효’라는 관리 논리 속에서 소멸되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제도는 근본적 한계를 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차이가 적지 않다. 일본은 사형·무기징역 사건 기록을 50년간 보존하고 재심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별도로 관리하며, 미국 역시 장기 보존 또는 영구 보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기록이 오래 남아 있어야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종결 사건에 대한 사후 검증이 가능하다”며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 권력 행사를 더욱 신중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존기간 연장과 소급 적용, 전자기록 전환 등 현실적인 대안을 포함한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형사사건에서 ‘구속’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국가형벌권 실현을 위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강력한 처분이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원칙이 아니라 예외로 두고 있으며, 구속이 타당한지 여부를 다시 판단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바로 구속적부심사와 보석이다. 이 두 제도는 모두 구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청구(신청) 시기와 판단 기준은 분명히 다르며, 무분별하게 신청하여 기대만 키웠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법원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어떤 사정이 있을 때 기존 판단을 바꾸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구속적부심사는 법원이 구속의 적법 여부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절차다. 최초 구속결정이 적법한지 여부에 더하여 구속 이후 새로 발생한 사유까지 포함하여 구속을 계속할 필요성이 여전히 있는지를 판단한다. 구속적부심사는 구속된 피의자, 변호인,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나 가족, 동거인 또는 고용주가 청구할 수 있다. 공소제기 전까지 청구 가능하며, 수사 방해 목적 등이 없는 경우 청구서 접수 시부터 48시간 이내에 심문이 진행된다. 구속적부심사에서 법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같은 제복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이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각종 복지와 예우 제도에서 교도관은 반복적으로 제외되고 있다. 제복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혜택과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포함되어 있으나 교도관은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호국원 안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마저도 같은 제복공무원인 교도관들의 존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소외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교도관 개개인의 자존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가 퇴직 교도관 역시 호국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곳에 안장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는 교도관 전체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 직업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되찾기 위함이다. 교도관의 업무는 단순히 수용자를 관리·감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교도관들은 어떤 죄명으로 수용되었든 수용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운동시간과 종교집회 참가 등을 철저히
잘못된 한 번의 판단은 이후의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특히 전력이 있는 행위가 또다시 반복되었을 경우 이후의 선택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술기운이 남아있던 저녁, 경찰의 정차 신호 앞에서 그 기로에 서게 됐다. 그에게는 이미 두 차례 음주 운전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의 음주 단속에 걸린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공포감에 중대한 판단 착오에 빠져든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은 이를 생각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를 통해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하나의 실수가 연쇄적인 오판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더 큰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형사사건을 다루다 보면 이런 케이스를 흔히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행동이었겠지만, 이것이 수사기록상에 남게 되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특히 의뢰인처럼 반복 전과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의 시각은 냉정하다. 음주 운전에 무면허 운전, 여기에 사문서위조까지 더해져 의
처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써본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조그맣고 나를 닮은 너를 두고 난 무책임하게 집을 나와버렸지. 본래 1년의 별거를 약속했지만, 세월은 기약 없이 10년이나 흘러버렸다. 달력을 헤아려 보니 벌써 너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이더구나. 이곳에 와서 네 또래 정도 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이리 마음이 가는지…. 은연중에 나는 너를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밖에 있을 땐 뭔가 준비가 되어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벌써 다른 가정을 꾸렸는데 내가 나타나면 마음의 상처를 후벼파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지. 또 지금의 내 초라한 행색으로 인해 서로 마음만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젠 모든 걱정을 다 걷어버리고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들, 나 또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단다. 내성적으로 자란 탓에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혼란을 많이 겪었어. 그런 전철을 밟아보았기에 이혼만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게 혼자만의 다짐으로 되는 것은 아니더구나. 훗날 아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너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래도 가슴
함께 수감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접견실 유리 너머로 내 모습을 보며 펑펑 울더라고….” 하는 짠한 경험담이 그것이다. 사회에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교정시설에 들어간 것이 그만큼 큰 비극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하긴, 어찌 보면 사는 동안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비극 중 죽음 다음으로 큰 비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정시설에 있는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루는 의료과에 가려고 나왔는데, 이미 같은 사동의 다른 재소자 한 분이 먼저 나와 계셨다. 덥수룩한 수염, 불안한 눈빛.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냐고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공황장애와 조현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나 또한 양극성정동장애와 공황장애로 긴 시간 고생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쓰여 의료과에 다녀오는 내내 챙겨주게 됐다. 거실로 돌아가던 중 문득 나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마음가짐이 떠올라 한마디 건네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운을 뗐다. “…○○씨, 생각을 바꾸면 좀 괜찮아져요. 잘 생각해 봐요. 여기 생활이 뭣 같고, 오고 싶어서 온 곳은 아니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용자입니다. 개간 이후부터 꾸준히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열혈 독자입니다. 유익한 정보도 많고, 늘 수용자 입장을 대변해 주셔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를 살려주신 교도관님 한 분께 감사함을 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25년 6월에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중점관리 대상자입니다. 도박 중독으로 가족을 잃고, 제 인생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경주교도소에 있을 당시 수면제를 털어 넣고 극단적 시도를 했습니다. 당시 제 상태는 위급했기에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자신을 보면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져 비관적인 생각들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만난 함수호 계장님은 그런 제게 은인이 되어주셨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계장님은 저뿐만 아니라 고민이 있는 수용자들이 있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시고, 항상 수용자 편에 서서 도와주십니다. 관구팀장님이라 항상 바쁘신데도 도움을 요청하면 제
나는 마약 판매 혐의로 구속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4년 정도 살고 나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고된 형량은 내 예상보다 두 배는 높은 8년이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긴 글렀다며 엄살을 떨고 죽네 사네 했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형이 확정되면서 만기출소 날짜를 통보받고 좌절한 지 약 보름 만에 옛날에 있었던 일로 인해 추가 건 수사가 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애꿎은 하늘 탓을 하다가 ‘죄는 내가 지었지, 하늘이 지었나’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대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재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행유예 조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1년 2개월이 확정되어 내 총 형기는 9년 2개월이 됐다. 8년을 선고받았던 날 그토록 절망했는데, 추가 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간사하게도 내 가장 간절한 바람은 ‘제발 8년만 살고 나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였다. 그 마음의 변화가 스스로 우습기도 했다. 지금은 ‘나, 약은 했지만 나약하지는 않다’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중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