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금은방 유리창을 둔기로 깨고 수천만 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3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 형사8단독(윤영석 판사)은 특수절도 및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8)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18일 오전 3시 31분께부터 약 30분간 인천 계양구 임학동의 한 금은방 유리창을 둔기로 부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귀금속 39점, 시가 3618만9000원 상당을 훔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범행 직후 같은 날 오후 5시 6분부터 이튿날 오전 3시 22분까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을 청테이프로 가린 채 영종도 일대를 운전한 혐의도 받는다. 조사 결과 A씨는 훔친 귀금속 가운데 일부를 전처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귀금속 매장의 유리창을 부수고 침입하는 등 그 태양이 매우 과감하고 사회의 평온을 크게 해쳤다”며 “절취한 귀금속의 개수가 많고 그 가치도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으나, 이미 두 차례 실형 전과가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자신의 연락을 피한다는 이유로 여성이 운영하는 다방에 불을 지른 7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주지방법원 형사22부(부장판사 한상원)는 현존건조물방화 혐의로 기소된 A씨(70대)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9월 23일 오후 6시 53분께 청주시 상당구의 지상 5층짜리 상가 건물 지하에 위치한 다방에 침입해 내부에 있던 옷가지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씨는 해당 다방의 여사장 B씨가 수개월간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다방 손님으로 B씨를 알게 된 뒤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해 왔으며 연락이 끊기자 직접 다방을 찾아가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불로 다방 내부 약 50㎡가 불에 타 소방서 추산 1800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으며 화재는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당시 다방 이용객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A씨가 다방에서 다른 남성과 함께 앉지 못하게 하거나 휴대전화에 저장된 다른 남성들의 연락처를 삭제하도록 요구하는 등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자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방화 범죄는 다수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범행 당시 건물 내에 거주민이 있었고,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전혀 하지 못한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친언니 명의로 신용카드를 무단 발급해 수년간 사용하고 카드론 대출까지 받아 억대 피해를 낸 60대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형사2단독(최승호 판사)은 사기 및 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60)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A씨는 2019년 11월께 강원 원주시에서 친언니 B씨 명의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B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무단으로 발급받아 사용하는 방식으로 약 5년간 1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득을 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23년 4~5월에는 B씨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카드론 대출을 신청하는 등 약 5000만 원의 추가 손해를 입힌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해가 전부 회복되지 않았고, 피해자는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신용카드 사용 대금 중 상당 부분을 변제해 온 점, 초범인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같은 제복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이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각종 복지와 예우 제도에서 교도관은 반복적으로 제외되고 있다. 제복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혜택과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포함되어 있으나 교도관은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호국원 안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마저도 같은 제복공무원인 교도관들의 존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소외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교도관 개개인의 자존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가 퇴직 교도관 역시 호국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곳에 안장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는 교도관 전체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 직업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되찾기 위함이다. 교도관의 업무는 단순히 수용자를 관리·감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교도관들은 어떤 죄명으로 수용되었든 수용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운동시간과 종교집회 참가 등을 철저히
잘못된 한 번의 판단은 이후의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특히 전력이 있는 행위가 또다시 반복되었을 경우 이후의 선택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술기운이 남아있던 저녁, 경찰의 정차 신호 앞에서 그 기로에 서게 됐다. 그에게는 이미 두 차례 음주 운전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의 음주 단속에 걸린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공포감에 중대한 판단 착오에 빠져든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은 이를 생각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를 통해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하나의 실수가 연쇄적인 오판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더 큰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형사사건을 다루다 보면 이런 케이스를 흔히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행동이었겠지만, 이것이 수사기록상에 남게 되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특히 의뢰인처럼 반복 전과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의 시각은 냉정하다. 음주 운전에 무면허 운전, 여기에 사문서위조까지 더해져 의
경찰 조사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들은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피의자신문조서에는 다르게 적혀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경찰 조사에서 진술이 왜곡되거나 불리하게 요약되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로, 개인의 기억력이나 말솜씨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앞으로 추가적인 경찰 조사를 앞둔 분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할지 경찰 수사관으로 재직했던 경험과 현재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한 팁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먼저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진술한 그대로’가 아니라 ‘수사관이 이해하고 정리한 문장’이 기재된다. 많은 피의자들이 착각하는 점이 있다. 피의자 본인이 진술한 그대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경찰들은 흔히 “조서를 꾸민다”고 표현한다. 이 말은 곧 수사관이 피의자의 진술을 듣고 자신이 이해한 대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한다는 의미다. 진술 전후의 맥락은 사라지고 결론만 남는다. 모든 경찰 조사에서는 이 사실을 유념한 채로 진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상황이 긴박했고, 상대방이 먼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바람에
처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써본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조그맣고 나를 닮은 너를 두고 난 무책임하게 집을 나와버렸지. 본래 1년의 별거를 약속했지만, 세월은 기약 없이 10년이나 흘러버렸다. 달력을 헤아려 보니 벌써 너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이더구나. 이곳에 와서 네 또래 정도 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이리 마음이 가는지…. 은연중에 나는 너를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밖에 있을 땐 뭔가 준비가 되어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벌써 다른 가정을 꾸렸는데 내가 나타나면 마음의 상처를 후벼파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지. 또 지금의 내 초라한 행색으로 인해 서로 마음만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젠 모든 걱정을 다 걷어버리고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들, 나 또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단다. 내성적으로 자란 탓에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혼란을 많이 겪었어. 그런 전철을 밟아보았기에 이혼만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게 혼자만의 다짐으로 되는 것은 아니더구나. 훗날 아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너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래도 가슴
함께 수감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접견실 유리 너머로 내 모습을 보며 펑펑 울더라고….” 하는 짠한 경험담이 그것이다. 사회에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교정시설에 들어간 것이 그만큼 큰 비극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하긴, 어찌 보면 사는 동안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비극 중 죽음 다음으로 큰 비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정시설에 있는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루는 의료과에 가려고 나왔는데, 이미 같은 사동의 다른 재소자 한 분이 먼저 나와 계셨다. 덥수룩한 수염, 불안한 눈빛.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냐고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공황장애와 조현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나 또한 양극성정동장애와 공황장애로 긴 시간 고생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쓰여 의료과에 다녀오는 내내 챙겨주게 됐다. 거실로 돌아가던 중 문득 나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마음가짐이 떠올라 한마디 건네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운을 뗐다. “…○○씨, 생각을 바꾸면 좀 괜찮아져요. 잘 생각해 봐요. 여기 생활이 뭣 같고, 오고 싶어서 온 곳은 아니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용자입니다. 개간 이후부터 꾸준히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열혈 독자입니다. 유익한 정보도 많고, 늘 수용자 입장을 대변해 주셔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를 살려주신 교도관님 한 분께 감사함을 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25년 6월에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중점관리 대상자입니다. 도박 중독으로 가족을 잃고, 제 인생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경주교도소에 있을 당시 수면제를 털어 넣고 극단적 시도를 했습니다. 당시 제 상태는 위급했기에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자신을 보면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져 비관적인 생각들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만난 함수호 계장님은 그런 제게 은인이 되어주셨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계장님은 저뿐만 아니라 고민이 있는 수용자들이 있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시고, 항상 수용자 편에 서서 도와주십니다. 관구팀장님이라 항상 바쁘신데도 도움을 요청하면 제
나는 마약 판매 혐의로 구속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4년 정도 살고 나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고된 형량은 내 예상보다 두 배는 높은 8년이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긴 글렀다며 엄살을 떨고 죽네 사네 했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형이 확정되면서 만기출소 날짜를 통보받고 좌절한 지 약 보름 만에 옛날에 있었던 일로 인해 추가 건 수사가 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애꿎은 하늘 탓을 하다가 ‘죄는 내가 지었지, 하늘이 지었나’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대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재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행유예 조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1년 2개월이 확정되어 내 총 형기는 9년 2개월이 됐다. 8년을 선고받았던 날 그토록 절망했는데, 추가 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간사하게도 내 가장 간절한 바람은 ‘제발 8년만 살고 나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였다. 그 마음의 변화가 스스로 우습기도 했다. 지금은 ‘나, 약은 했지만 나약하지는 않다’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중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