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존파보다 더 세다"... 연쇄 살인 택시 드라이버의 자수

父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행 계획
택시 기사로 위장, 女 손님에 범행
범행 알리려는 ‘과시형 자수’ 판단
지존파 일당과 함께 사형 집행돼

 

1994년 9월 27일, 서울 서초경찰서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조서를 쓰기 전에 기자들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지존파보다 더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는 5명을 살해한 폭력조직 ‘지존파’가 검거되면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직접 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한 이 남자의 이름은 온보현. 훔친 택시로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2명을 살해한 연쇄 강간 살인범이었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온씨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다 1979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지만 운전 중 8세 아이를 치는 사고를 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일로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택시 일도 그만두게 된다. 

 

1994년 8월,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고향 집을 찾은 그는 오랜만에 아버지를 마주치고 처음으로 살인 욕구를 느꼈다. 어머니를 학대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살인 계획은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대상을 향했다. 바로 불특정 여성들이었다.

 

자신의 살인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온씨가 선택한 수단은 택시였다. 택시 운전 경험이 있던 그는 차고지에 키가 꽂혀있는 택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한 택시회사 차고지에서 택시 한 대를 훔쳐 달아난다.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위조 번호판까지 만들어 달았다.

 

훔친 택시를 몰고 거리로 나온 온씨는 1994년 8월 28일 이른 아침 여대생 A씨를 손님으로 태웠다. 그는 목적지가 아닌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A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야산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러나 A씨가 차 문이 열린 틈을 타 도망치면서 범행은 실패했다.

 

이후 그는 두 번째 피해자 B씨를 태워 고향 근처 야산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B씨의 팔다리를 결박한 채 구덩이에 밀어 넣어둔 뒤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 틈을 타 B씨는 도주에 성공했다.

 

B씨가 도주한 사실을 알게 된 온씨는 또 다른 택시를 훔쳐 범행을 이어갔다. 피해자 C씨를 납치해 횡성군 근처 야산에서 성폭행하고 나무에 묶어둔 뒤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러 서울로 이동했다.

 

그가 피해자 D씨를 납치해 돌아왔을 때 C씨는 이미 도망간 뒤였다. 온씨는 이에 대한 분노를 D씨에게 퍼부었다. 그는 D씨가 숨질 때까지 무차별한 폭행을 가했다. 그의 첫 번째 살인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며칠 은신해 있던 온씨는 다시 택시를 몰고 거리로 나와 E씨를 납치, 성폭행했다. 범행 과정에서 E씨가 소녀 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피해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뒤이어 납치한 피해자 F씨는 심하게 반항한다는 이유로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두 번째 살인이었다.

 

1994년 9월 27일 경찰은 온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날 그는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했다. 온씨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범죄 전문가들은 그의 행동에 대해 ‘과시형 범죄’의 자수라고 판단했다. 당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지존파보다 자신이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온보현에 대한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1995년 2월 24일 서울고법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온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1995년 11월 2일, 그는 자신이 그토록 만나길 원했던 지존파 일당 6명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