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의 한 변호사가 구글 생성형 인공지능인 ‘제미나이’에 블랙박스 영상 분석을 맡기자 초 단위 분석 결과가 나왔다. AI는 칼치기가 발생한 시점과 차량 번호, 도로교통표지판 등을 토대로 사고 위치까지 특정했다.
이후 법률 AI 서비스 ‘엘박스’는 관련 법조와 판례를 붙여 16장 분량의 고소장 초안을 작성했다. 변호사의 최종 검토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었다.
A 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글을 쓰고 관련 법령을 찾고 초안을 다듬는 데 반나절 이상 걸렸을 일”이라며 “이제는 AI가 어쏘 변호사 역할을 하고 이용자가 로펌 대표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엘박스와 슈퍼로이어 등 리걸테크 서비스 이용이 늘면서 변호사들의 업무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판례·법령 검색, 사건 기록 요약, 서면 초안 작성 등 기존에 많은 시간이 들던 문서 업무를 AI가 빠르게 처리하면서다.
법률 AI 활용은 이미 변호사 개인 업무를 넘어 법조기관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8월 엘박스와 정식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도 지난 2월부터 재판 지원 AI 시스템을 시범 가동했다.
변호사들은 AI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시간 단축을 꼽는다. 한 부티크 로펌 소속 B 변호사는 “단순 작업에 투입되던 시간이 줄어 사건 검토와 전략 수립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개업을 고민하는 젊은 변호사들도 늘고 있다. 중소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입사 당시에는 2~3년 정도 더 근무한 뒤 개업할 생각이었다”며 “법률 AI를 써보니 이를 잘 활용하면 낮은 연차에도 업무 수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올해 안으로 개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AI 확산이 신입 변호사 채용 시장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존에 어쏘 변호사들이 맡던 리서치와 초안 작성 업무를 AI가 일부 대체하면서 중소형 로펌을 중심으로 채용을 줄이거나 신중하게 검토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대표변호사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신입 변호사를 추가 고용하는 것보다 법률 AI 구독 비용이나 자체 AI 개발 비용에 더 투자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신입 변호사에게 드는 비용과 비교하면 AI 비용이 더 저렴할 수 있다”고 말했다.
B 변호사도 “대형 로펌은 여전히 변호사를 채용하지만 규모가 작은 로펌들은 채용을 줄인 것이 느껴진다”며 “대표 변호사들 사이에서 어쏘 변호사와 AI가 수행하는 업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인식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변호사들의 취업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열린 변호사 배출 수 감축 요구 집회에서 정혁주 변호사는 “1~2년차 청년 변호사들이 개업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과거의 개업은 실력을 쌓은 변호사들의 선택이었지만 지금의 개업은 갈 곳을 잃은 청년들의 내몰림”이라고 지적했다.
AI가 법조계 고용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해외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올해 1월 열린 2026 전미경제학회 연차총회에서 윌리엄 비치 전 미국 노동통계국장은 “법조계로 진로를 정하면 안 된다”며 “로펌들은 더 이상 로스쿨 졸업생을 신규 채용하지 않고 AI에 리서치를 시키면 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법률 AI가 업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인력 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국가AI위원회 법제도분과위원장을 지낸 강민구 변호사는 “한국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부터 AI 성능이 급격히 좋아졌다”며 “이제는 숙련된 변호사 한 명이 AI를 활용하면 기존 어쏘 변호사 3~4명이 하던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신 AI는 이미 법률 문서 분석, 기록 요약, 쟁점 정리, 반박 논리 구성, 판례 탐색의 보조자가 됐다”며 “신입 변호사에게 단순 문서 정리만 맡길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더 높은 수준의 법률 판단과 전략 수립을 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