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대물림'... 부친 폭력에 시달린 딸이 아동학대로 조카 살해

집에 맡겨진 조카에 엽기적 학대
누적된 폭행이 속발성 쇼크 불러
주범 역시 과거 가정 폭력 피해자
대물림된 폭력 어린 생명 앗아가

 

2021년 6월 8일 수원지방법원에서 한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안모씨(여)와 이모씨. 두 사람은 부부로 10살이었던 김양을 학대해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김양은 안씨의 친 조카로, 언니의 부탁으로 부부가 양육 중이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13건의 영상을 공개했다. 1월 중순부터 김양이 숨진 2월 8일까지 부부의 휴대전화와 집에 있던 감시 카메라에 찍힌 것들이었다. 영상 속엔 아이가 옷을 모두 벗은 채 빨래하고 있는 모습, 불이 꺼진 거실에서 양팔을 들고 있는 모습 등이 담겼고 아이의 온몸엔 시퍼런 멍 자국이 선명했다. 어느 날에는 이모의 다그침에 개의 대변을 먹기까지 했다. 마지막 녹화 시점은 2월 8일, 거실을 걷던 아이가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진다. 이 영상을 마지막으로 아이는 사망했다.

 

가해 부부는 쓰러진 아이를 빨랫줄로 묶어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수차례 넣는 물고문을 가했다. 이후 아이의 반응이 없자 119에 ‘조카가 욕조에 빠져 기절했다’는 취지의 신고를 했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아이의 몸에 다수의 멍 자국을 발견해 경찰 측에 알리면서 범행이 드러났다. 김양의 부검 결과 이미 이전에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였던 것으로 나왔다. 사인은 다발성 피하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였다.

 

 

 

경찰은 안씨 부부에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본 판단이었다. 또한 아이의 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던 김양의 친모도 아동학대 방조 및 유기·방임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은 김양의 이모인 안씨에게 무기징역을, 이모부인 이씨에게는 징역 40년, 친모에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살인죄 성립을 인정하면서도 안씨에 징역 30년, 이씨 징역 12년, 친모 징역 2년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2022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지난 26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이 사건을 다시금 조명했다. 방송에서는 안씨가 수감 중 지인에게 보낸 편지가 소개됐다. 안씨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아버지 같은 사람이 돼버렸다”며 자책했다.

 

안씨의 아버지는 가정 폭력 끝에 아내를 살해한 이른바 ‘군산 아내 살인 사건’의 가해자였다. 연쇄 성폭행으로 징역 8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그는 2018년 출소 후 아내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다시 수감된 상태다. 안씨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가정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 온 학대 피해자였다. 가정 폭력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안씨가 또 다른 가정 폭력의 가해자가 된 셈이다.

 

안씨가 어린 시절 겪었던 학대의 트라우마는 결국 ‘악의 대물림’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져 어린 생명의 삶을 앗아갔다. 그러나 폭력의 경험이 곧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학대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개인의 책임과 함께,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지 못한 사회의 역할 또한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는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개입해야 할 범죄라고 강조한다. 적절한 보호와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피해 아동이 언제든 반복해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동시에 학대의 징후를 놓치지 않는 사회적 감시와 보호 체계가 작동할 때만이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