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에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피해자 진술 외에 뚜렷한 물증이 없는 사건도 있고 무죄를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법원이 피해자의 대응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비정형적 반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성범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개념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판결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난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행동을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 법리는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피해자가 범행 직후 가해자에게 평온한 메시지를 보냈다거나 신고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을 배척하는 것은 성범죄 피해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사건마다 다르며 일정한 유형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점도 여
나는 아내의 잔소리가 귀찮다며 귀를 닫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잔소리가 그리워 편지를 쓰고 또 쓴다. 그때 조금만 더 귀 기울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이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함께할 시간을 미뤘다. 이제야 아이들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난다. 음식의 소중함도 몰랐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텔레비전 속 음식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여름의 시원함과 한겨울의 따뜻함도 늘 당연하게 여겼다. 이제야 그 평범했던 편안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았다. 나는 참는 법을 모른 채 성질대로만 살아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냈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악물고 참는 법을 배운다. 늦게 배운 인내가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힘든 일은 피하고 요행만 바라며 살았던 시간들도 떠오른다. 그 선택들로 인해 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 사실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추악하고 더러운 잘못을 반복하며 살아왔
거기는 힘든 건 없는지, 지낼 만한지, 한 번쯤은 와줄 만도 한데 어째 한 번도 오지를 않냐…. 그러니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곧 있으면 네가 떠난 지 6년이 된다. 네가 그렇게 갈 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하던 일 다 제쳐두고 너를 만나러 갈걸 싶어 늘 후회하고 있다. 그랬다면 네가 떠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널 보내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 너와 난 어릴 적에 크면 소방관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주자고 약속했었지. 하지만 난 힘들다며 포기했고, 너만 홀로 우직하게 약속을 지켜내려 노력했었어. 그러다 22살이 되던 해에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방에 네가 소방관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올렸을 때가 생각나. 같은 대화방에 있던 친구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했지만, 내가 포기한 약속을 지켜낸 널 보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 그래서 일부러 더 격하게 축하해 줬었어. 그리고 속으론 늦게라도 너와의 약속을 지켜 너와 같은 소방관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임용 준비를 하던 중 오랜만에 안부도 물을 겸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네가 아닌 어머니께서 대신 전화를 받아 네 순직 소식을 전해주셨다. 설마 하는 마음에 네가 떠
아내 모르게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자본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매월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 탓에 마음이 조급해 투기 형태로 투자를 하여 금방 원금이 바닥이 났다. 한 달 봉급으로는 상환이 불가능해 개인 파산, 신용불량자가 된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 모든 통장은 압류되었고, 부모님의 증여재산과 퇴직금으로도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 두려움으로 술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다가 결국 알콜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보호자인 아내의 승인 없이는 채권자들의 방문이 금지되어 시달림에서는 멀어졌지만, 대신 아내와 아들들은 불안에 떨며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나는 가족으로부터 멸시받고, 친구와 지인들로부터는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아들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모든 통장이 압류돼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인 수당 등 정부 지원금은 압류 방지용 지킴이 통장을 이용했다. 회사 임금, 일용근로인부임은 아들 통장을 이용했다. 그러나 일자리가 변경될 때마다 법원의 압류결정문 사본과 가족관계등록부 등 관련 서류를 다시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신용 회복을 위해 파산 처리 전문 업체를 수
오빠, 부부에서 서로를 제일 잘 아는 남 되기가 참 쉽다.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지도 벌써 2년이나 되었네. 과거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주곤 했잖아. 그래서일까? 모든 걸 잊고 잘 살아가 보자는 오빠에게 난 결국 잡은 손을 놓자고 했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아. 실감이 안 나는 건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과거의 나는 늘 오빠 탓을 하며 오빠를 괴롭혔잖아. 더 이상 오빠가 그런 말들로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의 가장 예쁜 20대에 오빠를 만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살게 해줘서 고마웠어. 오빠가 힘든 만큼 나도 힘들 거고, 오빠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플 거야.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불러보자! 준아, 넌 나의 20대 전부였어. 그래서 그게 참 고마워. 다음번에 사랑할 때는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라. 아~ 덕분에 내 20대 너무 예뻤다! - 대구에 있는 너에게, 사랑했던 내가.
이 글을 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23년 3월에 구속되었거든요. 같은 해 6월 19일, 제 생일에 아버지께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루게릭병을 앓아 온몸의 근육이 다 빠진 채로 쓸쓸히 돌아가셨어요. 저는 집행유예도 있었기에 이번 사건으로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신 나간 행동을 했거든요. 많은 분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렸고요. 저를 믿어주시던 목사님, 사모님께서 필리핀에 선교를 가신다고 해서 사택에 몰래 들어가 체크카드 2개를 훔쳤습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수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징역을 살면서도 전 불량아였습니다. 미결 때 징역 3번, 기결 때 4번, 훈방 1번… 징벌방을 8번이나 들락날락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결국 임종도 지키지 못한 천하의 후레자식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제 걱정을 하셨습니다. 피해를 입은 목사님과 사모님께 저 대신 용서를 구하셨고, 아프신 와중에도 저만 생각하다가, 저만 기다리다가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버지가 늘 힘들고 무서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장남이었고, 두 동생에게도 피해만 주
2018년 1월, 지금은 없어진 ○○교도소 전기기능사 직업훈련 공과 훈련 시작 직후 있었던 일이다. 훈련생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로 꽤 젊은 축이었는데, 개중 돋보이는 62세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그 어르신은 자기소개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은퇴 후 좋지 못한 일에 연루되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이 나이에도 직업훈련을 신청한 이유는 출소 후 아파트 경비원 일을 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기기능사와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이 있으면 경비원 취직 시 우대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교도소에 들어왔다고 해서 마냥 절망만 하지 마시고, 이곳에서 재도약할 수 있는 인생 설계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1년간 선생님과 반장, 숙련공을 포함한 모든 훈련생들이 이 어르신을 도와드렸다. 어르신은 12월 말 시험 당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시게 되었지만, 소장님과 선생님,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교도소 안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무사히 전기기능사와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훈련생들이 그 어르신의 자기소개를 듣고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전까지만 해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내
“피해자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유죄가 나올 수 있습니까?” 성범죄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자주 제기하는 질문이다. 성범죄는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나 명확한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역시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피해자의 성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범행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 9. 7. 선고 2020도8016 판결).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면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한 문장이 누군가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한 가지 현실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법률 상담에서 “이길 수 있나요”라고 묻지만, 그 질문의 본질은 결국 “지금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느냐”에 가깝다. 분쟁은 대개 법률문제로 시작하지만 곧 생활 전반으로 확산된다. 거래 갈등은 사업 운영을 흔들고, 형사 절차는 직장과 가족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래서 법적 대응은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과정이 아니라 일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실제 분쟁에서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손해를 최소화하며, 과도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분쟁이 초기 대응의 부재나 감정적 대응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확대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계약 분쟁에서는 구두 약속이나 관행에 의존한 거래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납품, 검수, 하자 통지 등 기본적인 절차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분쟁이 장기화되기 쉽다. 전문가들은 거래 과정에서 최소한의 문서화와 시간 순서 정리가 분쟁 예방의 핵심이라고 지적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들은 대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을 찾는다. 이미 법정구속이 되었거나 항소심을 앞둔 경우가 많다. 시간은 제한돼 있고 선택의 여지도 크지 않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말이 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판단이 내려졌다”는 주장이다. 성범죄 사건은 특성상 은밀한 공간에서 발생했다고 주장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 외에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도 적지 않다. 객관적 물증이나 영상 자료가 확보되지 않는 사건에서는 결국 피해자 진술이 판단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재판 실무에서도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유지될 경우 신빙성이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수사 단계부터 법정 진술까지 내용 변화가 크지 않다면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1심 판결문 상당수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문제는 진술의 일관성과 사실의 객관적 가능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기준은 단순한 개연성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다. 따라서 사건 당시의 물리적 환경과 행위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성범죄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 강제성 여부다.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