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도소에서 야간 2팀 부당직 업무를 볼 때였다. 부당직은 새벽 2시에 당직을 교대해 아침 6시까지 소 전체를 책임지는 일을 한다. 그날 새벽 5시쯤이었다. 60여 명이 3,2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취사장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난 듯했다. 가석방 특혜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할 정도로 한여름의 취사장 출역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간간이 출역을 거부하는 수용자들도 있다. 그날은 수용자 A와 반장 사이에 일이 있는 듯했다. A가 작업거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반장은 다툼이 있긴 했지만 계속 출역을 거부하고 혼자 조사실에 간다니 A를 조사 수용시키라며 남 일 이야기하듯 말했다. 나는 다툼을 한 사람을 같이 보내야 하니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제야 반장은 머뭇거리며 두 사람을 화해시키겠다고 했다. 수용자를 조사 수용시키는 일은 교도관 입장에서 시간 낭비도 줄이고 일을 비교적 쉽게 해결할 방법이지만 나는 그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힘든 출역을 한다는 건 가석방 출소를 기대한다는 것일 텐데, 이번 일로 징벌을 받으면 그 혜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떻게든 A가 마음을 잡고 취사장 일에 적응하기를 바랐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온 소내가 술
어느 날 오후,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다.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우리 어머니랑 외삼촌이 보험 사기로 고소당했어요.” “보험 사기요? 사기 금액이 얼만데요?” “그게… 두 분 합쳐서 10억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네? 10억이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인의 어머니와 외삼촌은 여러 보험에 가입하여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 보험사로부터 보험 사기로 고소를 당한 듯했다. 아무래도 금액이 10억원에 달하다 보니 보험사 입장에서도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인에게 쉽지 않은 사건으로 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두 분이 너무 억울해하세요. 꼭 좀 도와주세요.” 며칠 후, 지인의 어머니와 외삼촌을 직접 만났다. 지인의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며 지금까지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2007년 8월경부터 상해보험 포함 총 13개사 보험에 가입한 후 다음 해부터 2016년까지 총 2,119일 동안 43개의 병원에 입원, 11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해 약 8억원을 편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고, 지인의 외삼촌은 역시 2007년 8월경 8개사 보험에 가입해 다음 해부터 약
D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몇 년 전, 외정문에서 접견을 기다리는 한 부부를 보게 되었다.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여기 신분증을 찍은 사진이라도 낼게요.”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멀리 부산에서 아들을 보러 온 부부였는데, 하필 어머니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외정문 근무자에게 사정을 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몇 번 접견을 온 적 있었고, 신분증을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근무자는 원칙을 내세울 뿐 요지부동이었다. 평소 자기 일에 자부심을 품고 원칙대로 일하는 강성 근무자라 아무래도 어렵겠다 싶어 나 역시 지나가려는데, 부부가 내게 달려와 눈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도저히 그 눈물을 외면할 수 없어 부부를 모시고 민원실로 향했다. “계장님! 이러시면 안 되죠! 민원실에서도 안 된다고 했는데 어쩌려고 이러세요? ” 외정문 근무자는 밖으로 나와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의 격렬한 항의에 부부의 얼굴은 다시 잿빛으로 변했다. 나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한 뒤 부부를 민원실로 모시고 갔다. 알고 보니 신분증 없이는 안 된다고 했던 민원실의 대답은 아직 일이 미숙한 직원의 잘못된 안내였다. 역시 다른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접견 잘하고 가
수사관과 피의자가 감정 싸움을 벌이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사관과 피의자의 갈등은 대출 명의자의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로 시작됐다. 대출금을 갚지 않으려는 신고로 C가 긴급 체포되었다. C는 주범 D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으며, 대출 명의자와 직접 접촉한 인물이었다. 보통 공범들은 서로의 신원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A는 합법적인 대부중개업체를 운영했기에 C는 A의 신원을 알고 있었다. C는 체포 후 “D가 주범이며 그의 인적 사항은 모른다”고 진술했으나, B 수사관은 A를 주범으로 단정하고 압박했다. 결국 C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A를 주범이라고 허위 자백했다. C는 체포된 지 24시간 만에 풀려난 뒤 A에게 “D의 인적사항을 모른다”면서 “수사관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A를 주범으로 지목했다”고 털어놓았다. A는 일부 가담 사실을 인정했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억울했다. 그는 대화를 녹음하며 결백을 입증할 희망을 가졌으나 사건은 더 복잡해졌다. 며칠 뒤, B 수사관은 보강 수사를 이유로 C의 출석을 요구했다. A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C와 동행하며 “D가 주범임을 솔직히 말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행동은 B 수사관에게 A가 사건을 조작하려 한
“6사 응급환자 발생! 의료과로 이동 중!” 다급한 무전 소리에 나는 한달음에 의료과로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수용자 L이 피투성이가 된 발뒤꿈치를 붙잡고 누워있었다. 아킬레스건을 끊으려고 한 모양이다. 수용자 L은 교도소 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그는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했다. 젊을 땐 정보공개 청구와 인권위 진정으로 직원들과 부딪혔고,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해를 서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50대가 되자 더 이상 그의 행동에 반응해 주는 이도 드물었다. 특히나 L이 수용되어 있는 교도소에 사형수와 무기수, 거물급 수용자들이 많아 그의 존재감은 점점 묻혀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벌인 소동도 관심을 끌어보려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타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 친구가 내게 그의 과거사를 전달하며 신경 좀 써달라 부탁해왔다. 교도소에서 나이가 들어버린 L은 가족도 없고 건강도 나빠져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파손된 안경으로 인해 가까이하던 신문과 성경조차 읽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답답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수용자 L이 결국 선택한 건 자해였다. 그가 선택한 자해라는 방식은 오히려 모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앞으로도 긴 시간을
2018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야기가 세상 떠들썩할 때 이야기다. 상담을 하고 싶다는 한 의뢰인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의뢰인 A씨는 00경찰서 수사관 B의 수사로 이미 한 차례 구속되었고, 출소한 지 3주 만에 다시 같은 수사관 B로부터 또 다른 사건으로 소환장을 받았다고 했다. “변호사님, 그 수사관한테는 더 이상 수사를 못 받겠어요. 사건을 제가 등록된 주소지로 이송하거나 수사관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어요.” 처음엔 간단한 행정적인 요청으로 보였다. 사건 이송 신청서나 수사관 교체 요청서를 작성해서 접수하면 될 것 같았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A씨가 연루된 사건은 흔히 “작업 대출”로 불리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이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연결해 서로 맞보증을 서게 한 뒤, 대출금을 받아 나눠 갖고 함께 갚아나가는 구조였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하며 두 명의 명의자에게 총 300만원을 대출받게 하고, 그 대가로 30만원의 중개 수수료를 받았다. 이런 사건의 본질은 대출자가 피해자가 아니라 금융사가 피해자인 사건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맞보증을 섰던 명의자 중 한 명이 대출금을 갚지 않으려고 112에 전
미지정 사동은 교도소 안에서도 가장 험난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험지 중 험지’로 불리며 교도소 직원이라면 다들 고개를 흔들며 피하려 한다. 이해는 된다. 이곳엔 규율을 상습적으로 어기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단체생활이 어렵거나, 신체적으로 작업을 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통제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 수용자 중 절반 이상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이라 사람들이 더 예민한 상태다. 오늘도 나는 이 험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다들 미지정 사동을 꺼리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바람에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만큼 인간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깊이 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지정 사동에서 근무했던 시절은 아득히 멀어졌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몇 사람이 있다. “주임님, 제 얘기 좀 들어주십쇼…” 어느 날 아침, 한 노인 수용자가 나를 찾았다. 늘 그렇듯 바쁜 아침이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뭔가 무겁고 오래된 사연이 느껴졌다. 직업군인으로 퇴직한 노인은 매달 군인연금 300만 원이 꾸준히 나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교도소에 들어온 후부터 연금은 부인에게
“변호사님, 저희 남편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지인의 소개로 연락했다는 한 아주머니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아주머니의 너무나 간절한 목소리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제 남편이 ○○시 연꽃단지 조성 지자체 보조금 편취로 검찰에 구속됐어요.” 당시 관리가 허술해 보이는 지자체 보조금을 흔히 ‘눈먼 돈’이라고 부르며 허위 영수증을 첨부해 보조금을 부정하게 타가는 사례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며 대대적인 감사가 있던 때였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가 이미 많이 되어 있었다. 바로 ‘지자체 보조금 편취사건’이었다. 법조계에선 흔히들 이런 사건을 ‘언론 탄 사건’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건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다양한 언론 채널에서 보도되며 아직 혐의가 입증이 되지 않았고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당사자가 유죄인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개인적으로 업무적인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선임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절실함이 마음에 걸려 일단 남편부터 접견해보기로 했다. 성실하고 순박한 농민으로 보였다. 대체 이 사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 저는 연꽃단지
1992년, 소년수형자들과 함께했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총무과로 이동하게 되었다. 새롭게 담당한 업무는 영치품 업무였다. 영치 업무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꼼꼼함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업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안과장이 나를 불렀다. “SOFA 수용자를 영치 청소부로 데리고 있을 수 있겠나?” 나는 뜻밖의 제안에 당황해 물었다. “제가 영어도 못 하는데, 미국인 수용자들을 어떻게 데리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이 한국어를 잘하니까 의사소통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지금 SOFA 수용자 10명이 공장에도 출역하지 않고 사동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래서 공장으로 보내려 했는데, 굿리치와 램지라는 두 명이 영치 청소부로 일하고 싶다고 하더군. 너도 영치 업무가 많으니 데리고 일해봐.” 그렇게 해서 나는 SOFA 수용자 굿리치와 램지, 그리고 한국인 수용자 한 명을 영치 청소부로 데리고 다니며 일을 하게 되었다. 굿리치와 램지는 시작부터 내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았다. 특히 자신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점에 대해선 거침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따졌다. 서로가 낯선 가운데 교도관과 수용자 관계이기도 해서 처음부터 좋은 팀워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쇼생크탈출」의 첫 장면은 20년간 수감된 레드(모건 프리먼 분)가 가석방 심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레드는 가석방 위원들 앞에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 사회에 위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신에게 맹세합니다”라면서 간절히 가석방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각’입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레드는 또다시 가석방 심사를 받고 10년 전과 똑같은 말을 하지만 결과는 또 ‘기각’입니다. 또다시 10년이 더 지난 뒤 이제 수감생활 40년 차인 레드는 가석방 심사에서 교화되었느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냉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교화? 헛소리야! 그것은 정치인들이 꾸며낸 말이야. 당신 같은 젊은이가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낸 말이지. 죄를 뉘우쳤냐고?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소. 옛날의 젊은 나를 만나서 지금의 현실을 말해주며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러나 그 젊은 녀석은 오래전 사라지고, 이 늙은 놈만 남았어. 어서 부적격 도장이나 찍고 내 시간을 그만 뺏어.” 그런데 이번에는 가석방이 승인된다. 레드가 가석방을 간절히 원할 때는 ‘기각’되다가 가석방을 체념했을 때 비로소 ‘승인’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