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와도 그날이 떠오른다”…낙동강변 피해자들, 30년째 남은 고문 기억

비만 와도 되살아나는 수사실의 공포
재심 무죄 이후에도 이어진 고통...

 

 

부산의 한 주택가. 빗방울이 떨어지자 최인철(63) 씨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목덜미로 물이 스치는 감각을 피하려듯 옷깃을 여몄다. 비는 그에게 단순한 날씨가 아니었다. 30여 년 전 수사실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는 신호다.

 

1991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20년 넘게 복역한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는 지금도 고문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발생 3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당시의 공포는 일상 속 감각을 통해 반복적으로 되살아난다.

 

 

최인철(63) 씨는 가랑비가 목덜미에 닿는 순간마다 과거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잠을 재우지 않기 위해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비가 오면 반드시 우산이나 비옷을 챙겨야 하고, 샤워할 때도 물이 목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 회를 먹을 때면 와사비를 옆에 두지 않는다. 몸이 냄새조차 거부한다.

 

최씨는 “물고문 당시 코와 목으로 들어온 물에서 와사비 맛이 느껴졌다”며 “이후에는 회를 먹을 때도 와사비를 함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경찰이 고통을 더하기 위해 물에 와사비를 섞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또 "물고문 때 물고 있던 수건을 경찰관이 갑자기 당겨 부러진 이도, 그전에 다쳤던 팔에 박혀있던 철심과 나사가 튀어나왔던 고통도 시간이 흐르니 무감각해졌다"면서도 "비와 와사비처럼, 그날의 기억이 겹치는 순간이면 아직도 경찰서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동익(66) 씨 역시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고문을 당하며 의식을 잃었다 깼다를 반복했다”며 “살기 위해 불러주는 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이 겪은 피해는 신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았다. 장씨는 “구속 당시 두 살이던 딸이 성인이 돼 있었다”며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딸에게 아버지로서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강압 수사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백으로 인해 선택지는 사라졌고, 결국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사건의 결론은 재심에서 뒤집혔다. 재판부는 2021년 2월 4일 고문 사실을 인정하고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약 30년 만의 판단이었다.

 

한편 두 사람은 재심 과정에서 고문 사실을 부인한 당시 경찰관 5명을 위증 혐의로 부산경찰청에 고소했다. 수사 과정의 위법성과 책임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