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LG 배터리 美 불법체류자 취급…한국인 300여 명 구금

업계 “비자 막아놓고 불법체류자 단속…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서 건설 중인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이 이뤄져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이 구금됐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지난 5일(현지시간) 기습 단속을 벌여 총 47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다수는 한국인이며, 상당수가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으로 입국했으나 취업이 금지된 상태에 있거나 체류 기간을 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본분을 다했을 뿐”이라고 단속을 옹호했다.

 

재계는 “미국 정부가 앞에서는 투자를 장려하면서도 정작 필수 인력에 대해 비자 문제를 이유로 공사를 가로막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숙련 전문가를 H-1B 비자로 파견하려면 몇 개월씩 걸리는데, 현장 특성상 단기 비자(ESTA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비자 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지 않으면 공장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수 기업들이 회의나 계약 목적의 B1 비자나 ESTA를 활용해 단기간 근무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이런 상황이면 언제든 단속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전문직 비자는 H-1B지만, 연간 발급 규모가 8만5천 명으로 제한돼 있어 현실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청은 협력사에 취업비자 사용을 권고하지만, 세부 관리까지 책임지기는 불가능하다”며 “만약 원청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다면 앞으로 해외 공사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단속에서도 현대엔지니어링 협력업체 직원 약 170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전원이 한국인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이번 사태로 인해 배터리뿐 아니라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다른 산업의 대미(對美)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미국 정부가 자국 건설사 활용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기술 유출 우려와 높은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외교부는 조기중 주미국대사관 총영사와 주애틀랜타 총영사를 현장에 급파하고, 현지 공관을 중심으로 대책반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업계와 무역협회 등은 한국인 전문가 전용 취업비자(E-4) 신설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캐나다·멕시코·싱가포르 등 FTA 체결국에 특별비자 제도를 운영 중이다.